21세기에 대한 저간의 그림들이 너무 일방적인 희망으로만 채워지고 있는데다 모두 자기위주의 경쟁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오늘날 자본주의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동시에 서구중심의 세계체제론이 정보 및 문화산업의 확산, 시장의 단일화와 개방, 지구촌적 라이프 스타일의 상품화및 보편화 등을 통해 관철되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경계가 완전히 무시되는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나라마다 경쟁력 강화 논리로써 국민적 생산력을 정치적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경제와 정치의 현실적인 힘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이념적 성향속에서는 과학, 기술, 지식 등이 모두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이 적자생존론이 오늘날 지구 도처에서 국가간, 민족간, 문화체계간에 자기의 국지적 이익을 위해 오직 경쟁심만을 키우고 지구 전체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윤리적 자세를 망각케 유도한다.
환경은 기술의 진보나 경제 발전보다도 인간의 생존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의 기반이다. 그러나 나라마다 이기적 산업화 추구를 통해 이를 무자비하게 착취한다. 문제는 지역간 혹은 전지구적으로 생태계와 자원의 파괴를 가져오는 이 환경오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공업화에 따른 녹색산업의 퇴조와 환경파괴등으로부터 기아와 질병의 문제가 지역간의 차등화를 낳으면서 확산될 것이며 저개발국의 지속적인 인구팽창과 빈곤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것이 인간적 삶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는데도 각국은 무관심과 냉담, 그리고 오직 자기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경쟁력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또하나의 성향은 증오심의 확대이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조작되는 타문화에 대한 편견과 아집의 산물이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가졌던 하나의 통합된 세계공동체의 실현에 대한 기대는 70년대 들어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배타적 국가주의가 공공연하게 정치세력화해 재등장함에 따라 깨지게 되었다. 이는 탈현대주의적 폭력이 아니라 타문화집단을 화합할 수 없는 별개 종류로 여기도록 만든 정치적 조작에 의한 것이다. 외국인 기피와 혐오및 추방, 그리고 이에 편승한 정치 세력의 등장을 보자. 인종주의와 종교갈등이 인종청소라는 말아래 비인간적인 살상을 끊임없이, 그리고 갈수록 치열하게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기와 직결되지 않은 현실이라는 이유로 국외자의 입장을 취하거나 종교적 배경이나 민족적 연관성에 기반해 편을 든다는 것은 놀랄 만하다.
만약 이러환 환경오염과 자원 파괴, 인구팽창과 식량부족이 낳는 기아와 질병의 만연, 끊임없이 일어나는 종교와 민족분쟁 혹은 인종주의적 편견, 증오가 낳는 계급화, 그리고 세계가 빈부 계층으로 나눠지고 그것이 정치적 위계체계로 재생산되는 등의 전지구적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각 나라나 민족집단이 상호 냉담과 배척의 자세로 자기의 생존과 승리를 위한 경쟁에만 급급한다면 21세기는 결코 진보한 세계를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성 상실과 인류의 파괴를 자초하는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서울대 교수·인류학>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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