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입장 정 회장 한때 곤경에/“정 회장 득표력 있나” 일부 의심/아벨란제 믿은 일선 “단독” 선회한때 수세에 몰렸던 정몽준회장은 「비전1」과 「비전2」를 제시한 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회장과 이사 하야토 아프리카축구연맹(CAF)회장과 손을 잡고 FIFA의 개혁을 외치며 월드컵 유치분위기를 반전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터져 나온 한·일 공동개최 파문으로 한국의 유치활동은 유치위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위기의 요인은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위기는 공동개최에 대한 한국유치위원회 수뇌부간의 의견이 엇갈리며 야기됐다.
○“공동개최” 일서 먼저
지난해 7월초께 일본에서 느닷없이 공동개최 발언이 튀어 나왔다. 일본 고노외무장관이 『한·일 공동개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고노외무장관의 공동개최발언은 곧바로 알려지지 않아 한국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곧이어 김윤환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이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 자격으로 방일하면서 공동개최 파문은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총장은 방일에 앞서 『이번에 가면 한·일공동개최를 토의할 예정』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김총장의 공동개최 논의 계획은 당시 한국유치위 관계자들과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유치위는 공동개최에 대한 수용여부 때문에 극심한 의견대립을 겪어야 했다.
구평회 유치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인 정회장마저 공동개최에 대해 팽팽히 맞섰다.
공동개최를 지지했던 집행위원 가운데 정회장의 유치활동 성과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모위원은 『정회장의 표가 얼마나 있느냐. 자신의 한 표 외에는 전혀없지 않느냐』며 『(일본에 패할것이 뻔한데) 공동개최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 집행위 불참
기분이 상한 정회장은 유치위의 집행위원회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유치위수뇌부간의 불협화음이 밖으로 새어나오면서 한국의 유치전망은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공동개최에 대한 정회장의 입장은 달랐다. 정회장은 『지금 우리는 일본에 비해 분명히 열세에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동개최를 논의한다는 것은 한국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면서 『설령 공동개최를 논의하더라도 힘을 얻고난 뒤에 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일부 유치위 수뇌진은 이미 덴마크에서 튀어나온 「선물파동」을 정회장의 책임으로 몰고 있었으며, 『정회장식의 유치활동은 더이상 곤란하다』며 그를 공박했다. 또한 『접근하기 어려운 유럽지역 집행위원들에 대한 로비에서 정회장은 빠져야 한다』고까지 주장, 정회장을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정 회장 빠져야” 주장
하지만 한국유치위의 분란까지 야기시켰던 공동개최논의는 불을 지폈던 일본이 소화까지 하는 묘한 수순으로 마무리됐다.
김총장의 일본방문에서 공동개최는 정치권 차원에서만 거론됐을 뿐 양국 축구계의 의사와는 전혀 별개였다.
공동개최논의로 시끄럽던 무렵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 주한일본대사가 구위원장을 방문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과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할 의사가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주한 일대사 단독 밝혀
그동안 공동개최에 대해 약간의 미련을 갖고 있었던 구위원장으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공동개최논의는 이것으로서 종료됐다.
곧이어 한국정부도 『2002년 월드컵을 단독개최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일본이 한때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검토했던 공동개최에 대해 느닷없이 입장을 바꾼 것은 주앙 아벨란제회장 때문이었다.
법률가 출신으로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아벨란제회장은 역사상 유례가 없고 규정에도 없는 「월드컵의 공동개최」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공동개최논란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일본 유치위 관계자들에게 『왜 쓸데없이 공동개최 논의를 벌이느냐. 투표일까지 유치활동에나 전념하라』고 언질을 주었다는 것이다.
89년부터 유치활동에 돌입한 일본은 아벨란제회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은 곧 「세계축구계의 법」이었고 2002년 월드컵 개최지도 그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벨라판 공최 첫 거론
사실 공동개최를 가장 먼저 거론한 사람은 아시아축구연맹(AFC)의 피터 벨라판 사무총장이었다. 지난해 2월 AFC 사무총장회의에 참석차 방한했던 그는 서울 성북동의 현대 영빈관에서 정회장 주재의 만찬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벨라판 총장은 『아시아 축구발전을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가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월드컵사상 가장 치열한 유치전이 펼쳐지고 있는데 지는 쪽의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라고 공동개최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인도계 말레이시아 국적의 그는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맥길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지식인이었다. 말레이시아 교육부와 체육부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66년 AFC와 인연을 맺은 그는 비상한 머리로 아시아축구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로비자금 딴데 쓰자”
그는 『양국이 공동개최에 하루빨리 합의하고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쏟아붓고 있는 수백만달러를 아시아축구발전을 위해 활용하자』며 「속보이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벨라판 총장의 공동개최발언은 국내외적으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제언 차원에 그쳤다.
당시에는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그의 제안이 결국 현실화 하리라고는 아이디어를 낸 그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전상돈 기자>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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