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경주노선 논쟁은 「제3의 외곽노선」을 선정키로 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로써 경부고속철도 건설은 공사비와 일정을 재조정해야 하는 등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역사 문화유산의 보존원칙이 개발우선 논리를 물리쳤다는 점은 수확이지만 이것도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정부의 시간벌기란 인상이 짙은 이번 결정엔 아쉬움이 너무 많다. 문체부가 경부고속철도 계획단계에서부터 참여했더라면 이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 문화유산의 보존은 절대과제인데도 이 때문에 4년을 허비한 당국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새 노선이 결정되더라도 설계 지표조사 교통 및 환경 영향평가 등 제반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경부고속철도는 완공이 3년 정도 늦어지고 공사비도 4조∼6조원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주도심지 통과노선을 밀어붙이기식으로 고집한 건교부나 이를 방관하고 있다가 뒤늦게 제동을 걸고 나선 문체부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새 노선을 채택키로 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체가 문화재인 경주는 어느 노선을 택해도 역사 문화유산을 해칠 우려가 크다. 새 노선 선정엔 이 점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매장문화재는 개발우선정책에 밀려 수없이 훼손됐다. 지난해엔 개발 등을 위한 구제발굴이 97건이었는데 올해는 1백50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학술발굴이 줄어드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현재 새 노선안으로는 건교부의 경주 도심통과안과 문체부의 건천―화천 우회노선의 중간선이 떠오르고 있다. 행여 이 안이 채택된다면 이것은 양 부의 체면을 고려한 정치적 절충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유적 보존이란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기회에 고도보존법을 제정, 고도 경주보존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신도시를 건설해 경주시민들의 재산상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옛 모습을 많이 잃은 경주를 복원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고도보존의 기본 방안으로 경주뿐만 아니라 부여 공주 등에도 해당된다.
무엇보다도 경부고속철도 건설같은 대형국책사업은 치밀한 준비와 함께 계획단계부터 관계부처의 참여를 정례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불필요한 국가적 낭비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경주노선 논쟁은 대형국책사업은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의 한 모델을 제시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이 점을 대형국책사업과 문화유적 보존행정에 살려 나간다면 이번의 쓴 경험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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