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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과학자들 외화벌이 동원”/귀순 정갑렬·장해성씨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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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과학자들 외화벌이 동원”/귀순 정갑렬·장해성씨 일문일답

입력
199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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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동포,감시속 차별 대우 시달려/주체사상 환멸 체제붕괴 시간문제북한 과학자 정갑렬씨(45)와 조선방송위원회 드라마작가 장해성씨(51)는 7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북한과학기술과 북한방송상황의 실태와 북한인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증언했다. 특히 정씨는 북송교포에 대한 차별대우와 과학자로서의 좌절을 말하면서 감정이 북받친듯 한동안 울먹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초 일본대사관에 망명요청을 했는데. 일본망명의사와 귀순경로는.

(정)『일본에 망명할 의사는 갖고 있지 않았다. 구체적인 탈출경로와 과정은 이 자리에서 밝히기 어렵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과 대학동창으로 알고 있는데 김평일과 김정일의 관계는.

(장)『76년 김일성대학 철학부 재학 당시 김평일이 정치경제과에 다녀 그냥 아는 정도였으며 김평일과 어머니 김성애는 곁가지로 김정일과는 정상적인 사이가 아닌 것으로 안다』

―북한의 과학기술정책기조와 중점지원 부문은.

(정)『85년 김일성이 이름있는 과학자를 모아두고 「과학자들은 금방석에 앉혀도 아깝지 않다」고 했으며 88년 국제발명전람회에서 우수한 순위에 든 과학자에게 고급주택과 승용차를 하사하는 등 우대책을 강조했다. 특히 김정일이 올 1월2일 국가과학원을 현지방문, 침체해있는 과학연구수준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며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의 보도과정은.

(장)『매월 5∼7일 당선전선동부 방송과에서 월보도방향지침이 내려오고 이에따라 방송계획이 짜인다. 방송지침은 김정일과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선전, 미일제국주의 침략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자나 작가가 작품을 생산한 뒤 부장―부국장―부위원장의 결재를 받고 방송위원회의 검열과 국가검열국에서 파견된 검열원의 최종검열을 받은후에야 방송이 되기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정치지도자가 자주 바뀌는 한국의 정치제도와 북한체제에 대해 인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장)『북한에도 하나의 생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자주바뀌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의 피폐한 생활상의 근본원인이 정권세습에 있는 것을 알고있지만 생활고에 시달린 인민들은 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북한인민들은 김정일 체제하에서 더욱 살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인민들의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최근 상류층귀순자가 늘고 있는데.

(정)『북한체제는 겉으로만 인민을 위하지 반인민적인 체제다. 일반인들 사이에도 뭔가 잘못돼 가고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지식인은 특히 정치·사회제도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분석능력을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에 지식층이 귀순을 많이 하는것은 필연이다』

―최근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비방방송이 많은데.

(장)『94년7월 김일성사망이후 남쪽에서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갑호비상령까지 내린 뒤부터 당지도부가 비방방송 지시를 했다』

―과학기자재의 성능과 현황은.

(정)『북한은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벌이면서 특정과학자외에 노동자도 기술혁신이 돼야한다고 선전하지만 구호에 그치고 있다. 인적·물적자원을 전쟁준비에만 투입, 발명품을 실용단계로 발전시킬만한 자금과 장비가 없다. 실례로 천리마트랙터, 승리자동차를 개발했지만 과학적 기술토대가 없어 모델변경 등 발전을 못시키고 있다. 과학자들도 과학연구사업을 위한 자금과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외화벌이에 뛰어들고 있다』

―북한방송은 김정일의 정권유지를 위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승계시기는.

(장)『김일성사후 김정일을 주석으로 추대하기 위한 추대환영문 드라마 등 작품을 준비하는라 밤을 새기도 했는데 방송이 계속 연기됐다. 승계시기는 3년상 이후인 올 7,8월로 예상되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북송동포에 대한 대우는.

(정)『북송동포들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군입대도 불가능했으며 정치·사회적 진출이 제한됐고 조총련 사업일꾼만 말단 행정부서에 배치됐다. 70년 일본내 친척들의 북한방문길이 열리면서 조총련이 북한에 문제제기를 해 군문제가 해결되는 등 생활환경이 다소 나아졌으나 원주민에 비해 생활토대가 없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에 살았다는 죄때문에 간첩혐의가 부가되고 감시를 받고 있다』

―북한 붕괴시기와 반체제움직임은

(장)『북한은 권력상층부와 일반인과의 모순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다. 주체사상만 해도 사람들이 거의 다 환멸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8,9월께 수십명의 고위군관이 반혁명분자를 색출하는 국가보위부에 잡혀갔다. 또 몇해전에는 소련군사아카데미 소속원들이 국가보위부에 체포됐으며 가족들은 추방당했다』

―김정일의 출생지는.

(장)『김정일의 출생지는 북한의 최대비밀이다.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날조이며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난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이 사실을 작가동무인 송구철에게 이야기했는데 송이 국가보위부에 체포돼 이 문제를 거론, 북한을 탈출하게 됐다』

―망명동기는.

(정)『북송동포에 대한 차별대우속에 아버지가 비참하게 돌아가셨으며 형님은 김일성대에 들어가 작가가 될 꿈을 상실했다. 나는 김일성대 교원이 될 꿈을 가졌으나 귀국자라는 이유로 국가과학원 물리연구소로 배치되는 등 북송동포에 대한 차별에 통분을 금할 수 없었다. 과학기술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북한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 북한을 탈출하게 됐다』

―북한 대남방송에 동원된 월북자는.

(장)『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민자당 강원도지부 대표위원이라는 사람이 방송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동향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없어졌다』<김상철·정진황 기자>

◎두 귀순자 누구인가/9살때 북송선… 김일성대 물리전공 정씨/중서 단신이주… 드라마 120편 집필 장씨

북한과학자 정갑렬씨(45)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으로 5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9살때인 59년12월 재일교포 1차 북송때 부모와 삼촌 사촌동생 등 가족 7명이 함께 북송선을 탔다.

이후 65년11월에 3명의 친척이 추가로 북송선을 타 모두 10명의 가족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정씨는 76년 김일성대학 물리학부 일반물리과(고체물리 전공)를 졸업하고 3년간 3대혁명소조원으로 일했으며 국가과학원 물리연구소 연구사 등을 거쳐 문화예술부 메아리음향사 음향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이었다.

부친 재선씨는 조총련 북오사카 재정부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사망했다. 정씨는 첫 결혼 실패후 86년 홍정미씨(36)와 재혼, 1남1녀를 뒀다.

방송작가 장해성씨(51)는 45년 중국 길림(지린)성에서 태어나 18살때 북한으로 단신 이주, 군복무를 마친 뒤 김일성대학 철학부 김일성노작과를 졸업했다.

76년부터 3년간 평북 선천군 협동농장 3대혁명소조원으로 활동한 뒤 79년부터 조선중앙방송 기자로 일했으며 귀순 전까지 10여년간 조선중앙방송 라디오 드라마작가로 활동하면서 토막극 70편, 연속방송극 50편정도를 집필했다.

아버지 장승록씨는 6·25때 인민군으로 참전해 전사했으며 가족은 지난해 재혼한 부인 서귀옥씨(36)와 딸 4명이 있다.

◎기자회견장 이모저모/정갑렬씨,당숙들과 “감격의 상봉”

/엘리트출신들답게 논리정연 달변/망명 구체 경로 묻자 “말하기 곤란”

○…정갑렬씨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경남 진주에서 올라온 7촌 당숙 정점준(64) 정말준씨(57)와 뜨거운 상봉의 감격을 맛보았다.

이날 상봉은 정씨가 귀순 직후 관계당국에 부친 정재선씨의 고향이 진주라고 밝혀 추적 끝에 이뤄졌는데 서로 울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지 못하다 한참후 친지들의 안부를 물었다.

족보까지 갖고 온 당숙들은 정씨로부터 부친이 지난해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고생만 하다 고향도 못보고 숨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갑렬씨와 장해성씨는 모두 김일성대를 졸업한 북한 엘리트 출신답게 보도진의 질문에 논리정연한 달변으로 대답했다.

특히 정씨는 과학자로서 북한과학의 실태와 그동안 느꼈던 좌절감을 생생히 전했으며, 귀순동기와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가족들이 겪은 고초를 설명할 때는 감정이 격해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들은 구체적인 망명경로에 대해선 『말하기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씨는 『처음에 북경주재 일본대사관에 망명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초 일본으로 가길 원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구체적인 망명경로는 밝히지 않았다. 장씨도 『북한 탈출후 중국 동북지방에서 4개월정도 머물렀으며 북경을 거쳐 고마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게됐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인 경로는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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