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 진화 흥미소설이나 가벼운 읽을거리 이외에는 읽는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어쩌면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흥미있게 보는 사람이라면 일리인의 책 「인간의 역사」가 재미있다고 느낄 것이다.
인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을까. 이 세상이 처음 만들어지던 때에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노동과 인간의 관계나 계급으로 구속되는 역사같은 것들 훨씬 이전에 나무 위에서 원숭이로서 살던 인간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욱 흥미로웠다.
까마득히 높은 나무 위에서 살던 원숭이의 한 떼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주 아득한 오래 전의 어느 날이다. 지상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사나운 맹수들이 사는 위험한 땅이었다. 아주 아득한 오래 전의 어느 날 안전한 나무 위에서 내려와 돌이나 막대기를 움켜잡기 시작한 그들 원숭이는 미지의 공포에 무방비로 떨면서 조금씩 먹이사슬을 부수어 나간다.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숲 언저리에 있었다.
장 자크 아노감독의 영화 「불을 찾아서」를 생각하면 된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내가 그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어떤 생태학적인 특별한 호기심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읽는 책이 아니다. 사이버 스페이스나 해저도시가 현대의 사람들에게 신비롭고 이상적인 세계이듯이 완벽한 원시의 세계, 철저하게 비문화적인 세계도 마찬가지로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아주 즐거워하면서 읽었다. 그 이후의 원시공동체라든지, 모계제이후 부계제사회는 처음 부분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사회과학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SF소설처럼 생각하면서 읽었던것 같다. 책은 사람처럼 편견이 없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 원숭이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에 거부반응을 느낄지라도 「인간의 역사」는 「불을 찾아서」만큼 재미있다는 것이다.<배수아 소설가>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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