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 약화… 캄 정치불안 해소 전기「킬링필드」 대학살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 공산반군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68)가 5일 캄보디아 북서부 반군 본부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했다고 반군 부사령관이 6일 밝혔다.
이에 앞서 캄보디아 국방부와 내무부 고위 소식통들도 이날 크메르 루주 지역 첩보원과 주민들의 정보를 인용, 폴 포트가 수주간 말라리아를 앓다가 이번주초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76년 크메르 루주 정권 총리로 취임, 친중정부를 세운 뒤 79년 1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축출될 때까지 극단적인 농업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도시민의 대량 농촌소개, 수백만명의 추방·살해를 자행,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조직적 살인마」로 불려 왔다. 대량학살의 주범이란 악명은 한때 그가 지녔던 탈식민지 민족해방 투사의 면모를 깨끗이 지워 버렸다.
그는 모택동(마오쩌둥) 사상에 심취, 1940년대 베트남 호지명(호치민) 휘하에서 반프랑스 운동에 투신했으며 46년 캄보디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60년부터 12년간 캄보디아 공산당 서기로 활약하면서 조직을 강화, 75년 크메르 루주 공산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론놀 군사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베트남의 침공으로 정권이 몰락한 뒤 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는 태국접경의 북서부 밀림지역으로 도피, 중국의 지원을 업고 신캄보디아 베트남 괴뢰정부와 투쟁을 계속해 왔다.
크메르 루주 세력은 91년 캄보디아 평화협정이 조인되면서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과 신캄보디아 정부가 연합정권을 수립, 토벌작전을 전개한 데다 중국의 지원 단절로 급속히 세력이 약화했다.
그는 85년 키우 삼판에게 명목상 권한을 물려줬으나 지금까지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크메르 루주 세력의 급속한 와해를 몰고와 캄보디아의 고질적 국가불안 해소의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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