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의 종두법 발견으로 박멸두창은 중세말과 근대초의 흑사병이나 신대륙의 두창에 비해서는 사망률이 훨씬 낮았지만 유럽에서는 19세기까지도 여전히 위협적인 질병이었다. 1680년 런던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한해에 5,000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하여 그중 20%인 약 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19세기초에 이르러서도 영국에서는 대략 해마다 4만5,000명쯤이 두창으로 사망했다.
두창은 신대륙에서 참혹한 소식이 들려오고 절름발이등 지체부자유나 심한 곰보를 후유증으로 남기기 때문에 번영과 진보에 들떠 있던 「문명화한」 유럽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할지도 모를 악마로 비쳐졌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두창을 근절할 조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두창의 끔찍한 개인적·사회적 폐해를 널리 알리는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종두법이라는 신의 선물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고 또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제너의 종두법은 근 2세기에 걸친 두창 박멸의 위대한 역사를 연 위업이었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 효과적인 처방을 인류가 처음으로 구사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말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유럽 이외의 지역에 서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종두법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황상익 서울대의대교수·의사학>황상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