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현장답사·증언등 수집자료 토대/러혁명전 이주초기 한인 삶 생생히 분석국사편찬위원회 이상근 근현대사실장이 19세기말∼20세기초 극동러시아에 뿌리를 내린 한인들의 삶을 탐구한 「한인 노령이주사연구」(탐구당간)를 냈다. 그동안 이 분야에 관련된 연구성과는 미미했고 그나마 노령지역의 한국독립운동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연구의 초점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의 초기 이주민생활사. 노령이주가 시작된 것은 1863년 무렵으로 대부분 관북지방(함경도, 평안도) 사람들이 흉작과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프리모르스키)의 극동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봄에 이주, 가을에 돌아오는 「계절」이주민들이었다.
황무지 개척을 위해 이주를 권장하던 러시아의 식민정책과 맞물리면서 한인이주는 더욱 가속됐고 대규모 한인촌이 속속 생겨났다. 1882년 연해주 인구통계에 따르면 한인은 1만137명으로 러시아인 8,385명보다 많았다. 이주한인들은 황무지를 개간, 농사를 지었고 광산이나 철도개설사업등에서 노역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을 전후해서는 생활고보다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변모해간다.
이씨는 수차례의 현장답사와 증언청취,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이주한인들의 삶을 분석했다. 성균관대 사학과를 나와 단국대에서 같은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노령지역에 이주한 한인들은 갖은 고통을 이겨내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며 『그들의 눈물어린 생활사는 많은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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