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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시대의 초극을 위하여”/팔봉비평문학상 염무웅 교수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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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시대의 초극을 위하여”/팔봉비평문학상 염무웅 교수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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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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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필활동은 척박했던 당대보다 훨씬 행복/수상 계기삼아 온전한 「비평정신」 구현 노력 다짐참다운 비평의 부재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오늘의 비평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4일 하오 3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제7회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 염무웅(55) 영남대교수도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상식에 앞서 염교수의 글을 싣는다.<편집자 주>

무릇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나는 흔쾌하다기보다 착잡한 감정에 사로잡혀 오랜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니고 이 상이 기념하고자 하는 인물 팔봉선생의 삶과 문학적 역정이 단순한 경의의 대상만이 아닌, 우리 현대사의 파란많은 굴곡을 전형적으로 농축하고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날 동안 「김팔봉문학전집」을 읽으며 팔봉선생이 살았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으며 그 시대적 과제에 맞서 그는 어떻게 살았던가, 그리고 그가 추구하고자 했으나 끝내 움켜쥐는데 실패했던 비평적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면 오늘 우리 후배비평가들은 어떻게 그것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팔봉선생은 만 스무살을 겨우 넘긴 젊은 나이에 시, 수필, 평론, 소설등 여러 장르의 문필활동을 통해 이 땅에 새로운 문학적 기풍을 진작시키고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다. 그것이 카프라는 조직에 의해 전개된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임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인데, 팔봉선생의 특이한 점은 그가 프로문학의 최초의 주창자이고 늘 조직의 지도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념적 계급주의에 빠지지 않고 전체 민중의 현실을 균형있게 보고자 했으며 또한 문학과 예술을 단순한 정치선전의 도구로 종속시키는 데에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일수록 득세하기 쉬운 우리의 명분론적 풍토에서 그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현실주의는 비록 그 당대에는 힘을 얻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프로문학의 민족문학적 전망을 담보해줄 수 있는 가장 정당한 가능성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역사에서 현실주의는 모순을 극복하고 갈등을 통합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현실의 장벽 앞에 굴복하고 타협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역기능으로, 그 자체 하나의 기만적인 명분론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1935년 이후의 팔봉선생의 인생노정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지통치의 가혹함이라는 객관적 조건 이외에도 그 객관적 조건만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한 진지한 인격의 파탄을 쓰라린 가슴으로 목격하게 된다.

거듭 생각해 보건대 일제말 팔봉선생의 언행은 일제시대만의, 또 팔봉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왕조시대부터 지금 이 시점에 이르는 우리 모두의 삶의 근본바탕에 연관된 문제를 제기한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결코 팔봉의 친일행동을 민족의 공동책임 안에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적 현실에 더 열정적으로 부딪치고자 한 사람일수록 더욱 힘든 시련과 고통스런 좌절이 부과되었다는 이 땅의 척박한 토양이다.

오늘 우리 시대는 팔봉선생의 시대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문필활동이 반드시 각박한 정치적 선택을 동반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우리는 누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이 시대의 비평정신은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팔봉선생이 만년에 얘기했던 「오늘의 문학」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떤 점에서 더 명징한 정신과 치열한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이 상의 수상을 계기로 이러한 물음을 화두삼아 팔봉의 시대를 초극하는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바이다.<염무웅 문학평론가·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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