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월드컵하고 온 국민이 노래하더니 드디어 월드컵을 우리나라에서 치르게 됐다. 한·일 공동개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하던 사람들도 막상 공동개최가 결정되자 환영일색이다. 단독개최로 표대결을 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일 공동개최도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라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한국인들의 자신감을 읽을수 있다.일본 개최가 유력하던 월드컵 유치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어 결국 공동개최라는 형식으로 승리한 우리자신에 대해서 『참 잘 싸웠다. 참 대단하다』는 벅찬 자부심이 샘 솟기 때문에 일본과의 공동개최를 끌어안는 성숙한 반응을 보일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성숙함은 월드컵 유치 이상의 소중한 수확이고, 앞으로 공동 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끄는 저력이 될 것이다.
일본의 월드컵 유치위원회가 발족한것은 91년 6월, 한국이 유치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94년 3월이었다. 불과 2년전인 그때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없었다. 되지도 않을 일에 국력을 소모하고, 국민에게 헛된 기대를 품게 한다고 탓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월드컵을 유치하겠다는 꿈을 품은 사람들은 지구를 몇바퀴나 돌면서 집념을 불태웠고, 온 국민이 서서히 그들의 꿈에 전염되어 갔고, 마침내 그 꿈은 이루어 졌다.
「올림픽은 정주영, 월드컵은 정몽준」이라는 재벌 부자의 유치 공로가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의 1등 공신은 경제발전이고, 세계를 무대로 단련된 기업인들의 투지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나 역전의 드라마로 세계의 관심을 더욱 뜨겁게 달궜고, 악착같이 도전하여 이뤄내고야 마는 한국인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었다.
월드컵 공동개최는 『하면 된다』는 한국인들의 불굴의 정신이 거둔 승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앞에 감히 불가능이 있을소냐』라는 대국의식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벽에 부딪친 아픈 좌절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도 제한된 승리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반아벨란제 기류를 활용할수 없었다면 『하면 된다』는 한국인의 투지도 벽에 부딪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점에서 한·일 양국은 보다 겸허하게 공동개최의 의미를 받아들여 서로 협조해야 한다.
88 서울 올림픽은 사회주의 몰락을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은 불과 반세기전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국이 분단으로 허리가 잘린채 옛 점령국과 겨뤄 공동개최라는 전례없는 결정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많은 나라들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월드컵 유치의 흥분을 차츰 세계에 대한 책임감으로 바꿔가야 할 때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