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분열·정쟁으로 초당 대처 못해”일본의 월드컵 단독유치 실패는 정계의 혼란과 정쟁 때문이라는 정치권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계의 월드컵 유치운동은 92년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현 신진당 당수등 7명이 자민당내에 「2002년 월드컵국회의원초치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자민당 단독 정권이 붕괴되고 정계에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의원유치위원회는 사실상 휴면상태에 들어갔다.
94년 12월에야 간신히 초당적으로 50명이 참여하는 「월드컵유치 국회의원연맹」이 발족했으나 정계재편의 앙금이 남아 이름처럼 「초당적」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94년 여름 반오자와연합 형식으로 자민당 사회당 신당사키가케의 연립정권이 출범하고 오자와는 신진당으로 딴살림을 차리고 나섰다.
유치위원회 시절부터 적극적이었던 오자와등 신진당 세력이 유치의원연맹에서도 활발히 움직이자 구원이 풀리지 않은 자민당 참가의원등은 떨떠름하게 『오자와가 손을 댄 문제라 흥미가 없다』며 한발을 빼는 태도를 보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95년에는 한신(판신)대지진과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테러사건이 발생해 정치권은 피해수습에 정신이 없었다.
올들어서도 주택금융전문회사의 거액 불량채권 처리문제를 놓고 세금을 투입하려는 연립여당안을 저지하기 위해 신진당이 한달가량 예산위 농성을 벌여 예산안통과가 지연되고 국회가 공전하는 치열한 정치공방이 벌어졌다.
실제로 유치활동에 나선 정치인은 유치의원연맹 회장인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총리와 지역구가 경기유치를 강력히 희망하는 의원등 4∼5명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지난달 28일 중의원 제2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유치의원연맹 총회에서도 단독개최안에 박수를 보내는 등 정보부재를 드러냈다.
일본 국민들은 『강력한 대통령제에 비해 리더십이 부족한 내각제, 그것도 엉성한 3당연립으로는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며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고 있다.<도쿄=신윤석 특파원>도쿄=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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