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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동개최에 바란다/최상룡(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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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동개최에 바란다/최상룡(화요세평)

입력
1996.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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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열망했던 월드컵은 한일 공동개최로 결론이 났다. 한국인의 기분에는 최선의 결정이 아닌지 모르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최선과 다름없는 귀중한 차선의 기회일 것이다. 그동안 월드컵 유치에 앞장섰던 분들의 노고와 국민의 하나된 함성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엄청난 국민의 결집력으로 고질적인 지역갈등을 용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국민정서를 말하면 한국 단독개최가 목표였지만 유치과정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동개최야말로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한국은 아주 불리한 조건 하에서 출발했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공동개최는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6년전부터 흔들림없이 단독개최를 준비해왔으며 승리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3년 뒤에 뛰어든 한국유치팀은 치밀한 유치운동을 벌였고, 거기다 아벨란제의 편파적 독주, 이를 견제하려는 유럽세력과 아프리카팀및 일부 남미팀의 동조등이 변수로 작용하여 초반 열세의 분위기를 뒤엎어 놓았다. 단순계산을 하면 우리 팀을 지지하는 집행위원수가 많아 투표로 한국 단독개최를 따낼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팀의 막판 우세가 오히려 아벨란제와 반아벨란제팀을 모두 공동개최로 유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공동개최는 그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한국팀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과만 보면, 반쪽 승리지만 따지고보면 유치과정에서 한국은 잃은 것이 전혀 없으며 판정승을 한 셈이다. 이에 비하면 승리를 장담해오던 일본이 실망감을 무릅쓰고 공동개최를 수용한 것은 완패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월드컵의 절묘한 정치드라마를 보았다.

○역지사지 자세를

이제 열광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FIFA의 결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할 때다. 다행히 돋보이는 것은 공동개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성숙한 모습이다.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아쉬움과 환호의 엇갈린 반응 속에서도 잘해보자는 결의가 대단하다. 특히 젊은이 가운데는 공동으로 개최하면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배울 것도 많다는, 건전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참으로 마음 든든하다.

그리고 한국인은 이번 월드컵유치에 보인 일본인의 태도를 너그럽게 보는 아량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그들의 승리가 쉽게 예견되었던 1년전에도 한일친선을 위하여 공동개최를 주장한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고 심지어 한일간의 국민감정의 악화를 막기 위하여 월드컵을 한국에 양보해야 한다는 유력인사도 있었다. 아마 한국인으로서 월드컵 일본 단독개최를 지지했다면 그는 엄청난 수모를 당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쌍방이 역지사지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국과 일본은 둘 다 단일민족이라 이민족과 더불어 공동작업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공동개최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궁금하다. 대회조직위원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 대회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본선 자동진출권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개·폐회식을 어디서 할 것인가, 그리고 대회수익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등. 실로 민감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결코 극복 불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내친 김에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하여 두 나라의 해묵은 민족감정을 개선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감정의 골이 너무나 깊은 두 나라의 국민이 교섭을 통해 월드컵을 치러나가는 과정을 전세계가 지켜볼 것이다. 세계는 돈을 너무 챙기려는 일본인이나 두 나라 사이의 쟁점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려는 한국인을 결코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 전기

숙적 독일과 프랑스는 정치적 화해도 이루어냈는데 스포츠로 한일화해를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한국인과 일본인은 세계적으로도 교육수준이 높은 국민이기 때문에 국제적 룰이나 보편적 원칙을 토대로 열린 대화를 하면 매사를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냉전시대처럼 반공때문에 야합할 필요도 없고 경제유착을 위해 뒷거래할 유혹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공동개최의 성과를 위해서 가능하면 한국과 한국인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일본지도자와 일본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한국지도자들이 우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일관계에서 두 나라 사람들이 좋은 일을 같이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런 점에서 FIFA가 전원일치로 결정한 월드컵 한일공동개최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전기를 마련할만한 의미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유럽인의 사려깊은 판단으로 이루어진 공동개최, 한일 두 나라가 타협과 관용으로 그 메시지를 실천했을 때 2002년 월드컵은 21세기 세계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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