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축구 저력 보여 주어야”/첫 출전 54년 스위스대회 주역들/꿈나무들 경기장 찾아 격려 열정월드컵 공동개최가 확정된 다음날인 1일 상오 77회 전국체전 중·고·대학부 서울예선대회가 열리고 있는 용산구 효창운동장. 한국이 월드컵에 처녀출전한 54년 스위스대회의 주역인 정남식씨(79)와 박재승씨(76)는 본부석에 앉아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월드컵 꿈나무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을 보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한·일 공동개최는 월드컵개최지를 독차지한 유럽과 남미인들에게 아시아 축구의 저력을 보여주는 최초의 기회인 만큼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축구계의 두 원로는 공동개최에 대한 섭섭함보다는 대국적인 견지로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생각했다.
정씨와 박씨는 50, 60년대 공격수와 수비수로 한국축구를 아시아의 정상에 올려놓았던 스타플레이어. 팔순이 가까운 나이이지만 국가대표선수 친목단체인 OB축구회장과 부회장을 나란히 맡아 주요 경기마다 참석, 선수들을 격려하는 등 축구열정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박씨는 『54년 월드컵 당시 우리를 9대0으로 이긴 헝가리에 대한 어떤 사전정보도 갖지 못한채 경기에 임했다』며 『더군다나 64시간 동안의 비행여독으로 줄줄이 쥐가 나는 바람에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아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출전한 20명의 국가대표중 생존해 있는 사람은 불과 10명.
정씨는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1차전 3골(5대1승), 2차전 2골(2대2무승부)을 넣으며 본선진출의 견인차 역할을 한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고려대 감독, 국가대표코치를 역임했다. 박씨 역시 월드컵당시 레프트풀백으로 활약했으며 56년 방콕에서 열린 제1회아시아선수권대회당시에는 주장으로 국제대회에서 첫우승을 이끄는 등 두원로가 모두 선수·지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정진황 기자>정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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