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모택동(마우쩌둥), 스탈린같은 사람만 어록이 있는 줄 알았는데 며칠전 문득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한테도 어록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여지껏 그걸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버님께 죄송하고 나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집집마다 「가훈」이 있고 아버님의 가르침(어록)이 있었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거창한 어록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그러나 그 말들이 진실이었음을, 60을 바라보면서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생각나는대로 몇 줄 적어보련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는데 술이 취하시는 날이면 곧잘 『절까지 가서 시주할 것 없다. 불쌍한 사람 밥 한 끼 사주는 게 큰 시주다』라고 하셨다. 밥 한 끼 먹기가 참으로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말을 하신 셈이다.
아버지는 또 『비빔밥은 사먹지 말라. 백반을 먹어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없는 사람은 먹는 모습이 상스러운데 이것저것 한데 섞어 볼이 터지도록 집어넣고 씹는 모습이 흉할 뿐 아니라 남이 먹다 남긴 것까지 쓸어넣는 것이 비빔밥이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게 사람의 모습이어서는 쓰겠느냐는 뜻이었다.
신혼초 였다. 아버지는 우리 부부가 자는 방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뒤돌아 가시면서 『박 대통령도 새벽 5시면 일어나는데 네까짓 것들이 뭔데 아직도 자』라고 하시었다. 나는 그 때마다 포항제철 현관에 걸려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이 생각나곤 했다. 허허벌판 백사장에 새까맣게 그을린 두 사람(박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이 삽질하는 기공식사진이었다. 그 사진 한 장도 정권이 바뀌면서 풍파가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또 『비단옷 입고 밤길 걷지 말라』는 우리 속담도 자주 인용하시었는데 우리집 식구는 물론이요 요즘 보면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같다. 아버지는 당신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이셨지만 사는 지혜야 어디 남에게 뒤떨어지고 싶으셨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도 자주 쓰셨다. 그러고 보니 정약용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니셨다. 아버지가 있는 사회, 어른이 튼튼한 사회는 밝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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