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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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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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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인형을 만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코는 크게 하고 눈은 작게 하는 것이다. 큰 코는 작게 다듬을 수 있지만 한번 깎아버린 코는 다시 크게 만들 수 없다. 또 작은 눈을 크게 할 수는 있지만 크게 파놓은 눈을 작게 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실수가 적은 법이다. ◆서울의 재개발 사업을 보고 깎아버린 코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울창한 숲을 밀어버리고 산꼭대기에다가 20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다닥다닥 붙여 지어놓은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번 깎아버린 산을 다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6공때 민주화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울의 산과 녹지들이 엄청나게 훼손당했다. 동소문 일대의 산은 도심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됐다. 미아리 고개 양쪽의 산과 서대문 금화터널 입구 주변, 무악재 일대와 인왕산 자락등등 도처에서 쉴새 없이 산자락이 잘려 나가고 있다. ◆도대체 서울에 도시계획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현 정부들어서부터 서울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녹지가 본격적으로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그린벨트에 대한 대규모적인 규제완화 조치이후 녹지훼손은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린벨트를 관장하는 전국 45개 기초자치단체들이 공식적으로 그린벨트의 해제와 완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30년 가까이 힘들게 지켜온 그린벨트 자체가 통째로 와해돼버리지 않을까 겁이 난다. 산을 깎고 숲을 밀어버리는 것은 나무인형을 만들면서 먼저 코부터 깎아버리는 것과 같다. 국토를 관리하는데도 나무인형을 만들 때처럼 원칙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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