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 억척아내도 한몫/김영명씨,집행위원 부인들 상대 로비/만삭몸 이끌고 남미까지… 「안티」 애칭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세울 꼬레아』의 신화를 창조한지 정확히 15년. 그때 정명예회장이 『독일어를 할 줄 아니까 쓸모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데리고 갔다는 당시 30세의 청년이 40대 중반이 되어 아버지의 도전과 성공을 재연했다.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가 발표된 31일 밤 11시(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돌더 그랜드 호텔의 기자회견장에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45)과 숙적의 라이벌인 나가누마 겐 일본축구협회장이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게임스코어는 무승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반된 표정에서 전세계는 이날의 승자와 패자를 분명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사가 반드시 경주의 논리 대로만 귀결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뒤늦은 출발을 뒤집기 위해 월드컵 유치 발표 이후 지구를 38바퀴나 돈 「밀리언 마일리지」의 소유자가 됐다. 도전과 배짱, 그리고 집념과 혼신의 노력이 대를 이어 불가능의 논리를 가능으로 뒤바꿔 놓은 것이다.
「취리히의 기적」을 연출한 사람은 정회장 뿐이 아니다. 「부전자전」에 못지 않은 「남편과 아내」의 「부창부수」가 있었다. 정회장과 부인 김녕명씨(40)의 조화스런 이중주가 국제 축구계를 감동시켰고, 여기에 정회장의 숙모인 장정자 여사(61·학교법인 현대학원 이사장)의 협연이 하모니에 완벽을 더해 주었다.
김씨와 장여사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움직이는 국제 축구계에서 「안티」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아줌마라는 뜻으로 친근감이 가득 담긴 호칭이다. 김씨의 활동은 내조 수준이 아니었다. 평범한 아내처럼 가방과 옷을 챙겨주고 건강을 보살펴 주는 것 외에 FIFA 집행위원들의 부인을 상대로, 남편 이상의 유치활동을 해왔다.
정회장이 유학한 미MIT대의 자매학교인 웰슬리대를 나온 김씨는 뛰어난 영어실력과 명랑한 성격으로 국제 체육계의 사교장에서 가장 우아한 게스트였다. 남편이 고집센 집행위원들에 대한 설득에 실패하면 아내는 그들의 부인을 상대로 뛰어난 화술과 끈질긴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FIFA집행위원 부부가 방한하면 꼭 집에 초대해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한국문화를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외교관에 버금가는 소양은 아마도 부친인 김동조 전외무부장관으로부터 내리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남편의 유치여행에 동반했다는 일화는 누구 못지 않은 그의 열성을 말해주는 사례다. 지난해 12월 에콰도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 선수권대회에 정회장을 따라 갔을 때는 만삭에 가까웠다. 김씨는 올 3월 둘째 아들을 낳아 정회장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김씨가 해산 후 몸조리를 할 때는 정회장의 숙모인 장여사가 그자리를 대신했다. 정주영명예회장의 넷째 남동생인 고 정신영씨의 부인인 장여사는 조카 정회장의 유치활동 캠프에 94년 합류했다. 독일에서 공부한 첼리스트인 장여사는 온화한 성품과 탁월한 외국어 실력으로 정회장 부부를 도운 숨은 조연이다.<취리히=전상돈 기자>취리히=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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