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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한·일에 보내는 기대/최인호 작가(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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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한·일에 보내는 기대/최인호 작가(특별기고)

입력
199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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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아 춤을 추고 후지산도 일어서라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이루고야 말았다.

동해물아 일어나고 백두산아 춤추어라. 아시아대륙의 맹장꼬리에 혹처럼 붙어서 지지리도 못 살고 지지리도 얻어맞고 지지리도 싸우던 이 강산에 단군 이래의 큰 잔치이던 올림픽이 열린 것이 어제인 듯 싶더니 새 세상이 열리는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구나. 한갓 둥근 축구공의 놀이마당인데 그것 가지고 뭘 그리 흥분하느냐 하고 잠꼬대하지 말라.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는 앞으로 6년. 그 6년동안 우리 민족은 기적을 이룰 것이다. 난쟁이였던 우리 민족은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어른이 되었고 무엇보다 상처입은 민족의 가슴에 붉은 태양과 같은 자부심이 떠올랐다. 그러나 보라. 두고 보라. 지켜보아라.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6년동안 우리 민족은 거인이 될 것이다.

그 뿐인가. 88년올림픽으로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가 무너지듯 월드컵으로 이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 마침내 통일이 다가와 평화가 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악이 범람하여 곧 멸망할 것 같으면서도 이 지상을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이 기묘한 방법으로 전세계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뽑힌 민족이며 선택받은 민족이니 민족이여, 2002년의 월드컵을 계기로 어둠과 고통과 상처와 슬픔의 역사를 딛고 일어서서 신천지의 광명 속으로 함께 나아가자.

반쪽의 대회라고 실망해서는 안된다. 황인종이면서도 스스로를 백인종으로 착각하고 있는, 아시아인이면서도 스스로를 유럽의 한 국가로 착각하고 있는 일본이 우리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들은 원통할 것이다. 올림픽을 한국에 빼앗기고 이번에는 월드컵을 사상 유례없는 공동개최라는 명칭으로 빼앗기다니.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개최국으로 신청하고 열심히 뛰었는데 3년 뒤에야 나타나 뒷북을 치다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다니.

그러나 일본이여, 안심하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나라의 곁에 있어 서로 불행했던 과거가 되풀이되어 왔었다. 멀리로는 왜란으로부터 가까이로는 그대들이 우리를 강탈하여 식민지가 되었었다. 그러나 5,000년의 역사동안 우리 민족은 그대들에게 단 한 번도 상처를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고맙다 일본이여. 그대들에게 입은 상처가 우리 민족에게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힘의 원천이 되어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으며, 아니다, 일본이 하면 우리는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일본이여. 어째서 그대들은 우리 민족에 대해서 고마워하지 않는가. 우리 민족은 그대들의 도덕성을 일깨울 단 하나의 벗인 것이다. 우리 민족이 있음으로 그대들은 정신대의 성폭력과 전쟁의 광기와 악령에서 깨어날 수 있다. 일본이여. 우리나라가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분단국가」라면 그대 일본은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분열국가」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인 하느님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두 발에 끈을 묶어 이인삼각의 기묘한 뜀박질을 시작하게 하신 것은 진정한 평화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싸움 뿐 아니라 민족과 민족의 불신과 갈등을 씻고 서로를 인정하고 평등하게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일본이여. 그대들이 창씨개명을 요구하던 그 곳 「서울」에서 개막전이 열리고 그대들이 총과 칼로 죽인 유관순할머니의 고향에서도 축구게임이 열리는 그 날이 찾아왔으니 이제 마침내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에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문을 열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자.

2002년 월드컵에 내세울 양국간의 공동 로고에서부터 마스코트로 어떤 동물이 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첩첩산중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일본이여. 부디 자폐증에서 벗어나 진정한 친구가 되자. 이 운명적인 침실 속에서 그대와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같은 침상에 함께 누웠으니 이제 우리는 더 많은 증오를 가진 적이 되어 「원수와의 동침」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잘못을 빌고 서로를 용서하는 「친구와의 동침」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그대 일본과 우리는 함께 해내고 함께 이기고 함께 이루고 말았으니, 함께 노래하자.

동해물아 춤을 추고 후지산도 일어서라. 백두산도 일어서고 현해탄도 춤추어라. 그리고 우리 땅 독도에도 그대의 땅 대마도에도 2002년의 월드컵을 알리는 대동아의 깃발이 펄펄 나부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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