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창설이후 70년간 유럽서 지배권/아벨란제 74년이래 장기집권에 유럽 대반격92년 전통의 국제축구연맹(FIFA)사의 상당부분은 세계축구계의 양대 산맥 유럽과 남미세의 갈등으로 점철됐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7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대파하고 정상에 오른 브라질은 대회 3회 우승을 기록하며 우승트로피인 줄리메컵을 영구히 가져간다.
줄리메는 제3대 FIFA회장이었던 프랑스인의 이름. 다음 대회인 서독 월드컵이 열린 74년 7월. 결승은 서독과 네덜란드의 대결로 펼쳐졌다. 브라질은 3∼4위전으로 밀린 뒤 폴란드에도 0―1로 패해 4위에 머물렀다. 세계축구의 정상을 다시 유럽이 탈환한 대회였다.
하지만 정작 유럽은 결승전이 벌어지기 3주전 그들이 70년간 독점해 왔던 세계축구계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남미에 넘겨줬다. FIFA의 회장직을 브라질의 주앙 아벨란제가 차지, 「아벨란제시대」를 허용한 것이다. 이후 월드컵의 주인은 유럽과 남미에서 번갈아 나왔지만 FIFA의 주인은 변화가 없었다.
물론 유럽의 반격도 간단없이 시도됐다. FIFA는 1904년 5월 「세계축구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7개국의 뜻이 한데 모여 고고성을 울렸다. 초대 회장은 프랑스의 로베르 퀴에렝. 이후 FIFA는 아벨란제 이전까지는 유럽의 독무대였다. 1906년 2대 회장에 영국의 대니얼 버레이 올풀이 취임, 15년동안 FIFA를 이끈다. 3대 회장으로 월드컵을 창설하고 축구를 세계의 스포츠로 올려놓은 줄리메는 1921년 회장에 올라 34년 은퇴하지만 이후 20년동안 명예회장으로 수렴청정하면서 33년이나 영향력을 행사했다.
4대 로돌프 윌리엄 실드레이어스(벨기에), 5대 아서 드러웨이(영국)에 이어 스탠리 로스경(영국)이 61년부터 FIFA회장을 맡아오다 74년 세계축구계를 경악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스포츠단체를 통틀어 처음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선거운동을 벌인 아벨란제가 로스경을 몰아낸 것이다. 줄리메컵에 이어 FIFA의 지배권마저 남미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아벨란제의 제국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사실 FIFA회장으로서의 아벨란제의 업적은 부정할 수 없다.
축구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 TV방영권을 판매하는가 하면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아디다스같은 거대 다국적기업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는 월드컵의 상업적 성공과 FIFA의 재정적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FIFA는 출전국에 경비와 숙식비를 제공하는가 하면 대회를 치른 이익금을 경기 수에 비례, 참가팀에 배당하고 있다. 아벨란제의 취임 당시 유럽연맹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FIFA가 월드컵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됐다.
유럽세 반격의 빌미는 이러한 업적에서 비롯됐다. 독단적으로 스포츠를 지나치게 돈과 결부, FIFA를 부패시켰다는 비난이 대두됐고 유럽의 반격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94년에는 스위스출신 조셉 블래터 FIFA사무총장과 스웨덴 출신 레나르트 요한손유럽축구연맹(UEFA)회장이 아벨란제의 6기 연임에 반기를 들었지만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말았다. 반아벨란제파는 후일을 도모했다.
이번 월드컵개최지 결정과정에 또 한번의 반격이 시도됐고 정몽준축구협회장은 반란군에 주사위를 던졌다. 갈등의 틈새를 파고들어 우리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였다.<김삼우 기자>김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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