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 「순정 여인」 인생 몰락/특유의 냉소로 절묘하게 풀어낸/우리나라 풍자 소설의 대명사채만식(1902∼1950년)의 「탁류」는 우리나라 풍자소설의 대명사이다. 식민지 시기 순정적인 여인 초봉의 인생 몰락을,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밴 특유의 냉소와 욕설로써 절묘하게 풀어간 수준 높은 작품이다.
사실 채만식은 생전 독자와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작가였다. 그의 풍자미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70년대 들어서서 였다.
채만식의 매력은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 고발이 아닌 간접적 풍자로 소화해낸 점이었다. 이것은 일제의 냉혹한 탄압이 존재했던 당시 식민지 문학인이 현실을 고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 가혹한 독재의 시기였던 70년대에 채만식이 새삼 주목을 받게된 것은 이같은 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소설의 무대는 탁류가 흐르는 금강하구의 군산이다. 몰반 정주사의 딸 초봉은 자기 집의 하숙생 남승재와 사랑에 빠지지만 당장의 물질적 도움을 기대하는 정주사의 강권에 의해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태수는 정을 통하던 여인의 남편에 맞아 죽는다. 초봉은 꼽추 장형보에게 겁탈당한 뒤 약국주인 박제호의 첩으로 들어 앉는다. 그리고 얼마후 초봉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박제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초봉에게 싫증을 느끼고 그녀를 꼽추 장형보에게 넘긴다. 초봉은 자기 신세를 서러워하면서도 친정의 궁핍한 살림을 돌보기 위해 장형보에게 몸을 맡긴다.
그러던 어느날 초봉은 딸에게 함부로 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장형보를 살해한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옛 연인 남승재와 여동생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남승재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그러나 초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남승재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살 대신 징역을 선택한다.
이 작품에서 정주사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모두 속물화하고 타락한 1930년대 한국사회의 인간상들이다. 이들은 초봉을 이용하고 탐하며 짓밟는다. 그리고 효용가치가 없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녀를 버린다.
채만식은 소설에서 이 속물들을 그만의 장기인 풍자로써 꼬집는다. 순결한 여인 초봉을 농락하는 이 사회가 채만식이 말하고자하는 탁류이다. 그런데도 초봉은 끝까지 이같은 탁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채만식은 남승재와 그의 연인 계봉에게 탁류를 헤치고 살아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암시적이어서 소설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이점에 채만식의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이은호 기자>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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