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18살 꽃다운 나이로 감옥에서 순국한 유관순(1902∼1920)열사가 30일 그의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이날 이화여고의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서 유열사의 조카 유제우씨(60)가 고모의 졸업장을 대신 받을때 노천극장을 가득 메운 재학생과 동창들은 기립박수로 선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바쳤다.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편입했던 유관순은 고등과 재학중이던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가했으며, 학교가 휴교하자 고향인 충남 천안군 동면으로 내려가 아오내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함께 만세부르던 그의 부모는 일경의 칼에 찔려 죽었다. 유관순은 천안 헌병대를 거쳐 서울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모진 고문으로 받은 상처가 악화되어 1920년 10월12일 옥사했다.
일제는 그가 21년 1월6일 출옥한 것으로 허위기록을 만들기까지 했으나, 해방후 이화여고 신봉조교장의 끈질긴 추적으로 25년간 어둠에 묻혔던 유관순의 역사가 세상에 드러났다. 감옥에서도 매일 만세를 선창하여 만세운동을 이끌고, 죄수인 산모와 아기를 희생적으로 돌보았던 그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순국소녀로 온국민의 가슴에 되살아 났다.
유열사가 사후 76년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은 기념식에는 이화학당 기숙사에서 유열사와 한방 친구로 지냈던 보각스님(92·속명 정도별래)이 참석, 옛친구를 회고했다.
『만세운동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우리는 서울역에서 밤 기차를 타고 각자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관순이는 천안에서 내렸는데,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어요. 6개월후 학교가 문을 열었으나, 관순이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이듬해 가을 시신으로 출옥했지요. 우리 친구들은 관순이가 석방되면 주려고 옷과 구두를 사놓고 기다렸는데, 일제의 감시로 영결예배에도 참석못했어요. 밤 기차에서 칙칙폭폭소리를 들으며 관순이가 「대한독립 어서오소, 대한독립 어서오소」라는 소리같다고 말하던 생각이 납니다』
신문에서 옛친구가 명예졸업장을 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찾아왔다는 그는 친구를 기념하는 장학금에 써달라고 100만원을 내놓았다. 이화여전과 동경제국여전을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참가했던 그는 남편과의 사별, 김구선생의 피습, 아들의 납북등을 겪은후 불교에 귀의했으며 자신의 불당에 유열사를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유관순의 친구인 그 92살의 스님은 3·1운동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임을 증언했다. 「유관순의 날」은 그가 만세부르던 모교, 정동 언덕에서 다시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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