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렬씨북경 도착하자마자 결행/정씨“안경 바꾸겠다”속여 북대사관 탈출/장씨통행증 변조 탈북,중서 4개월 전전정갑렬씨(44)와 장해성씨(52)는 어떤 경로를 통해 망명을 신청했고 현재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까. 그리고 망명동기는. 또 일본언론을 통해 이들의 망명사실이 알려지게 된 저간의 사정은 무엇일까. 7일 북경(베이징)의 일본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한 뒤 지금까지 이들의 행적을 알려진 사실에 기초해 추정, 재구성한다.
정씨는 4월19∼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4회 「국제발명, 신기술및 신제품 전시회」에 참석했다. 귀국길 돈을 아끼기 위해 일행과 함께 항공기 대신 기차를 이용해 일주일여의 여행끝에 7일 북경에 도착했다. 전시회 참가전부터 망명을 결심하고 있었던 정씨는 도착직후 일행에게 『북경에서 샀던 안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꿔야 겠다』며 숙소를 빠져나와 일본대사관으로 향했다.
정씨가 일본대사관을 택한 것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하는등 일본사정에 밝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7세때 아버지를 따라 가족과 함께 북한으로 이주했다. 정씨는 일본대사관에 망명의사를 밝혔으나 일본대사관은 일본은 정치적 망명을 원칙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서 망명수용을 거부했다. 4자회담 제안, 북·일 수교협상, 대북 쌀지원문제등이 어지럽게 맞물린 시기에 북한과의 관계악화가 미칠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대사관측은 대신 한국행을 권유했다.
일본대사관의 연락을 받은 한국측 관계자는 즉시 정씨의 신병을 인수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정씨의 신병을 홍콩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북경에서 망명처리를 하기에는 난점이 많았다. 중국정부의 「어려운 입장」도 고려됐다. 정씨는 상하이·선전등을 거쳐 15일 홍콩에 들어갔다.
정씨는 홍콩정청에서 우리측 정부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유엔난민 고등판무관(HCR)으로부터 망명의사 확인절차를 마쳤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망명사실이 알려졌으므로 안전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정씨를 서울에 안착시킨다는 방침이다.
정씨의 망명과 관련해 주목되는 사실중 하나는 그의 망명사실이 일본을 통해, 그것도 20여일이나 지난 다음에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정씨망명을 특종보도한 지지(시사)통신은 일본외무성소식통을 인용했다. 정씨 망명날짜와 보도 사이에는 22일이라는 시간차가 있다.
이와 관련해 오비리락이긴 하지만 「음모설」이 그럴 듯하게 나돌고 있다. 한일간 월드컵 유치경쟁이 막바지에 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악재로 작용할게 분명한 망명사건을 일본이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절차를 완료한뒤 이들을 서울에 데려와 망명사실을 공표하려 했던 계획이 무산된 것을 대단히 불쾌해 하고 있다. 때이른 언론보도로 정씨의 신변안전이 위협받게 된 점도 우리 정부로선 아주 편치 않은 대목이다.
문예총국 라디오 드라마작가 장해성씨는 1월말 북한을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통행증을 변조해 기차로 중국 선봉으로 넘어간 장씨는 여러 지역을 전전하다 홍콩행을 결심했다. 장씨는 친한친구 앞에서 김정일을 흉본게 밀고돼 망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장씨는 탈북 4개월만인 12일 선전에 도착했고, 이틀뒤인 14일 홍콩잠입에 성공했다. 장씨는 홍콩도착 즉시 우리총영사관에 망명신청을 했다. 장씨의 신병을 보호하고 있던 홍콩 총영사관측은 이튿날 정씨가 망명해 오자 함께 망명절차를 밟게 했다.<홍희곤 기자>홍희곤>
◎망명 2인 누구인가/정씨북송 재일교포 음향기기 연구 몰두/장씨북서 유명한 중앙방송 드라마작가
정갑렬씨(44)와 장해성씨(52)는 과학자와 방송작가로 북한의 상류 엘리트층이다.
정씨는 지난해 북한 잡지 「금수강산」1월호에 2페이지에 걸쳐 소개될 만큼 인정받은 과학자다. 7세때까지 일본에 살았던 재일교포 출신이다. 그래서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등 북경(베이징) 일본대사관에 망명 의사를 밝힐 때도 『일본인인데 여권을 잃어버렸다』며 유창한 일본어로 중국경비원들을 속이고 대사관안으로 들어갔다.
「금수강산」에 따르면 정씨는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출신으로 20세때 이미 철강 관련 기기인 「고속탄소분석기」를 창안했다. 70년대말부터는 음향기기 연구에 몰두, 80년대 중반 신식 전자재료인 「진동판영구대전체」를 개발했다. 94년 「스위스국제발명 및 신기술 전람회」에서는 북한이 자랑하고 있는 일명 「메아리 마이크」를 선보여 금메달을 받았다. 이 잡지에는 정씨의 가족으로 아버지 정재신씨와 형 성렬씨등 형제들이 나오고 있다.
정씨는 이번 스위스 전시회에서도 전극체계 분야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정씨의 망명 동기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개인적인 동기외에 과학기술에 대한 북한당국의 경시가 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인 장해성씨도 북한에서는 널리 알려진 중앙방송 소속 드라마 작가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당이 작품 방향과 주제선정에 늘 간섭하기 때문에 당과 마찰을 빚고 감시대상이 되는 등 신변상의 위기를 느꼈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에서 방송작가는 공산당의 이념을 주민들에게 전파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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