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활 직결 불구 무신경 여전/가죽·신발 최근 생산 연 13% 줄어경공업의 침체는 어제 오늘의 일도, 또 우리나라만의 현실도 아니다. 어느 나라든지 공업화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과정이고 만약 경공업국가에 머물러 있다면 영원히 선진국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공업이 더이상 설 땅이 없다는데 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상대적 위축이 아니라 아예 존립기반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재정경제원과 통계청에 따르면 86∼90년만해도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생산은 각각 연평균 17·2%와 7·6%씩 비교적 고른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 91∼95년 중공업은 매년 12·2%의 높은 신장률을 보인 반면 경공업은 연평균 0·1%의 마이너스성장으로 반전됐다. 불황기였던 92년(0·9%감소), 93년(5·6%감소)은 그렇다해도 과열양상까지 빚으면서 중화학공업이 15·8%나 성장했던 지난해마저 경공업은 고작 0·9% 생산증가에 머물렀다.
세부업종별로 보면 고사하는 경공업의 실상은 더욱 뚜렷하다. 한때 최대 수출 효자업종이었던 가죽신발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3·7%나 생산규모가 감소한 것을 비롯, ▲섬유 3·5% ▲의복 4·2% ▲가구 3·0% ▲목재 0·2%등 주요 경공업제품이 한결같이 생산이 줄어들었다. 경기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경공업은 이제 영원히 불황만 있는 셈이다.
이같은 경공업의 몰락은 전적으로 정부의 「중화학공업 맹신주의」가 낳은 결과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노동집약형에서 기술집약형으로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부가가치가 낮은 경공업을 외면했고 사양화를 부채질했다. 덕분에 국내총생산(GDP)내 중화학공업 대 경공업의 부가가치비율은 80년 54%대46%에서 90년 66%대34%, 지난해엔 76%대24%로 전환돼 이른바 산업구조의 외형적 고도화엔 성공했지만 실상은 산업구조의 극심한 왜곡이었다.
중화학공업은 대기업의 몫이다. 반면 경공업은 중소·영세기업의 영역이다.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의 명암을 달리 표현하면 대기업(재벌그룹)과 중소기업의 희비이고 곧 재벌의 경제력집중문제로 귀착된다. 또 소수대기업 근로자와 대다수 중소기업 근로자간의 「부의 불균등 분배」에 따른 사회적 갈등요인이기도 하다. 경공업의 불모지화가 단지 경공업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전체 국민경제 및 사회적 문제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경공업의 현실을 「구조조정상의 불가피성」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가 어려우면 무수한 지원대책을 내놓으면서도 신발 봉제 의류산업의 난관은 굳이 보려하지도 않고 있다. 한 당국자는 『경공업은 전략산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국민생활과 직결된 기초산업이다. 경공업 기반은 무너진 채 중화학공업만으로 선진국이 된 경우는 없다. 국민생필품 산업은 도외시한채 중공업만 육성한 구공산권국가들의 경험은 여러가지를 말해준다』며 현 산업정책의 문제점을 실토했다.
정부는 아직도 「중화학공업 신화」에 빠져있는 것 같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한국경제를 세계 7위권으로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21세기 경제장기구상」을 보면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정밀기계 로봇 항공등도 세계선두권에 진입시킨다는 계획만 있지 경공업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는 데서 「경공업 무신경성」을 읽을 수 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