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의 대상 수상 최인선씨/환경오염 심각성 다양한 오브제에 담아영예의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인선씨(32)의 양화 「오염된 공기·흑연두뇌―신체 Ⅰ」은 현대산업사회의 심각한 환경오염과 그 위기감을 다양한 오브제로 표현한 작품. 현재 미국유학중(뉴욕 주립대대학원)인 그는 『개인 차원의 감성과 소재에 초점을 두었던 종전 화풍에서 탈피, 사회적 관심사를 끌어들여 새롭게 시도한 작품으로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캔버스 위에 실, 인쇄물, 안료등으로 제작한 수상작은 화면의 밑바탕을 불규칙하고 거친 마티에르로 처리한 후 어렴풋한 인체형상과 각종 사물의 이미지를 곳곳에 배치한 이중화면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 전체를 아크릴판으로 뒤덮어 투명한 효과를 더해주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바닥화면이 오염된 문화와 환경을 의미한다면 그 위에 거꾸로 서 있는 사람과 미라형상, 돌연변이 염색체등은 환경오염이 초래한 무서운 결과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화면 중앙에 「오염된 신체」 「오염된 공기」등의 글씨가 적힌 투명한 필름을 걸어두어 분명한 메시지를 주는 점도 인상적이다. 심사위원들은 『다양한 오브제와 물감의 특성을 살려 사물에 감추어진 감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방식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그는 작품의 주제가 개인적 감성을 벗어나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된데 대해 『개인의 추억과 감성만 다루다보니 표현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앞으로 설치와 평면을 넘나들며 다의적이면서 사회성 강한 소재를 깊이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홍익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온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2회(92, 93년)와 우수상(94년), 중앙미술대전 대상(92년)등을 받았으며 9차례 개인전을 가졌다.<최진환 기자>최진환>
◎한국화 우수상 강현주씨/“작업전날엔 소풍앞둔 아이처럼 설레요”
『작업하는 며칠간은 잠을 얕게 잡니다. 어서 작업실에 나가 그림을 그려야 할텐데, 소풍 앞둔 아이처럼 설레거든요. 그리곤 새벽부터 틀어박히는 거죠』
강현주씨(29)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92년부터 서울미술고등학교에 재직했었다. 올 2월 돌연 학교를 그만둔 것은 남 보기엔 「배부른 짓」이었다. 명분은 피곤 누적.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행복했던 4년』이었다.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고 안정된 수입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알 수 없는 침체감이었다. 초대작가로 선정된 후 강씨는 오랜만에 그림에 몰두했다. 한국화부문 우수상 수상.
그는 『비로소 재기하는 기분이에요. 공모전에는 이렇게 나에 대한 채찍질과 스릴이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수상작 「방―뫼비우스의 띠에 관하여 Ⅱ」는 작가가 맞부딪치는 현대의 삶을 표현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입체, 공간의 확장을 향한 강씨의 욕구를 담고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는 호기심을 낳는다.
무엇보다 대담한 모험정신은 사다리꼴의 변형캔버스에 있다. 먹 이외에 오일파스텔 아크릴 오브제 등의 활용도 고정관념에 젖기 쉬운 한국화에 자극이 되었다는 평이다.
동아미술제 특선,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등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김희원 기자>김희원>
◎양화 우수상 이열씨/“자연과의 교감통해 인간본질 표현시도”
양화부문 우수상작가 이열씨(38)는 생명체와 인체의 어렴풋한 형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과 93년 방글라데시비엔날레 최고상 수상으로 화단에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작품에 대해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밑바탕에 깔린 정서를 그려보려 했다』고 말했다.
캔버스 위에 혼합재료를 사용한 작품은 살색이 지배하는 전체화면 속에서 검정색과 고동색 등으로 순간적 감흥을 빠른 붓질로 표현한 점이 특징. 물감이 확산되거나 응축되면서 이루어낸 형상은 인간의 신체, 원숭이, 타조, 물고기 등을 연상시킨다. 화면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자리잡는 원초적 공간 또는 생성의 장으로 이끌어가려 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5년전부터 「생성공간」시리즈에 매달려온 그는 『종전의 작품이 가는 실선에 의한 세밀한 터치로 설명적인 경향을 띤 데 비해 최근에는 더욱 집약·함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상이 불분명해진 만큼 암시성이 강해지고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충남대덕출신으로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지금까지 11차례 연 국내외 개인전 중 6회가 초대전 또는 수상기념전이었던 그는 9월에도 대구에서 초대전을 갖는다.<최진환 기자>최진환>
◎조각·설치 우수상 이홍수씨/“퇴락한 문화기호로서의 「책」 드러내”
조각·설치부문 우수상수상자로 선정된 이홍수씨(38)는 4∼5년동안 책이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작업을 해왔다. 수상작 「지벽」도 평범한 서가의 모습을 재현한 작품이다.
『「지벽」을 통해 일차적으로 책에 대한 향수를, 나아가 지식의 체계가 갖는 불안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동안 나무와 유사한 책의 물리적 속성을 계발하거나 책을 한데 엮어 여러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지식콤플렉스 등 책이 가져다주는 억압, 퇴락한 문화기호로서 책이 가지는 모습 등이 주제였습니다』
「지벽」은 1톤 트럭 2대분의 책을 가로 450㎝, 세로 300㎝ 크기의 대형 책장에 선반없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품이다.
서가라는 친근한 소재와 단색계통의 책표지가 일정한 조합을 이루어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가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서가의 책은 안정된 모습으로 놓여 있지 않다. 무더기의 책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중압, 불안감이 전해진다.
홍익대 미대 조각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이씨는 공모전 첫 출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앞으로 다양한 소재로 인간의 여러 모습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전북 익산출생. 현재 홍익대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판화 우수상 이성구씨/“형태보다 색으로 자연의 이미지 표현”
「From Nature―96 심상Ⅱ」로 판화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성구씨(33)는 잊혀져가는 자연의 흔적들을 동판에 새겨온 젊은 작가다. 줄곧 모노크롬작업을 통해 자연의 「형태」를 강조해온 그는 이번 출품작에서는 형태보다는 「색」을 위주로 자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냈다.
노랑계열의 흰 색 바탕에 고동과 검정빛의 고리형태를 찍어낸 수상작은 위 아래, 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극단적 추상이미지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골의 황토길에서 느낄 수 있는 토속적인 냄새가 배여 있다.
이씨는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연의 흔적은 형태로도, 색으로도 존재한다』며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색깔만으로 자연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다.
89년 홍익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일본 다마 미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는 현재 홍익대, 건국대, 인천대, 효성가톨릭대등 4개 대에 출강하며 판화를 가르치고 있다.
94년 제1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판화로 대상을 받았다. 그는 『동판화는 에칭부터 프린트작업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데, 짧은 기간에 작품을 준비하다보니 힘들었다』며 『결과보다는 밤을 새워가며 땀흘린 과정을 인정받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심사평/참신·독창적인 제작의지가 심사초점/수상작들 신선한 메시지에 깊은 인상/일부 기존틀답습·유형화 보여 아쉬움
7인으로 구성된 2차 심사위원단은 1차심사에서 통과된 한국화 7명, 양화 12명, 조각·설치 4명, 판화 2명등 25명에 의한 50점의 입선작 중에서 대상 1명, 부문별 우수상 수상자 4명을 결정했다. 수상자 선정의 기본방향은 이 공모전의 창립취지에 맞추어 젊은 작가의 독창적이고 참신한 제작의지에 초점을 두었다.
대상으로 결정된 최인선의 양화 「오염된 공기·흑연 두뇌―신체 Ⅰ」은 조각·설치부문 우수상 수상자인 이홍수의 「지벽」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으나 심사위원들은 최근 설치미술의 붐을 타고 위기를 맞고 있는 평면회화의 진작을 위하여 고려하기로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인선의 작품은 독창적인 기법의 개발과 시대상황에 걸맞는 신선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비록 우수상에 머물렀지만 「지벽」은 하나의 벽에 낡은 책들을 빽빽이 꽂아 시위를 벌이는 듯한 강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단을 이루지 않고 무작위하게 빽빽이 꽂힌 책들은 일상적인 책의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듯한 신선한 반전을 제시했다.
한국화부문 강현주의 「방―뫼비우스의 띠에 관하여 Ⅱ」 역시 전통의 무거운 짐을 지고 구태에 머물러 있는 한국화에 실험의지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심사방침에 의해 우수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으며 이성구의 판화 「From Nature―96 심상Ⅱ」 역시 신선한 창작의지가 평가되었다.
심사에 임한 전체적 인상은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열기와 호흡이 느껴졌으나 몇 작품들은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거나 유형화를 보여 아쉬웠다.
이 공모전이 채택한 개인전 팸플릿 제출이라는 공모방식은 작품 1∼2점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기량을 충분히 펼쳐 보인 개인전의 기록이며 작품평까지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평가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팸플릿 제작의 부담을 안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현실을 고려, 보다 폭넓은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모방식을 취하고, 또 한국일보 청년작가초대전만의 독특한 개성과 방향을 정립하기 위해 주제공모전형식을 도입하는 등의 보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모쪼록 이 전시가 한국미술에 강한 새 바람을 일으킬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대표집필 김영순 미술평론가>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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