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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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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봉암사(문화유산을 찾아서)

입력
199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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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에만 개방 “마지막 청정도량”/지증대사탑비 최치원 사산비명중 하나문경 봉암사는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청정수행 도량이다. 산문이 굳게 닫혀 일반인은 물론 불자들도 출입할 수가 없는 탓에 이 골짜기의 산빛은 아직도 맑고 깨끗하며 생동하는 기운이 넘친다. 일년에 단한번 산문이 열리는데 그날이 바로 사월 초파일이다.

봉암사는 가은읍에서 선유동 계곡쪽으로 가다 원북리 골짜기에 신령스럽게 솟아 오른 희양산을 이정표삼아 찾아 간다. 아침이슬을 머금고 눈부시게 피어난 목련꽃 봉오리를 연상케하는 해발 998의 이 바위산은 첫눈에도 나그네의 마음을 잡아 끈다.

신라말 최치원은 이 봉우리를 마치 갑옷을 입은 기수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내달리는 형상이라고 표현했다. 봉암사는 바로 그 수려한 봉우리밑에 지어진 봉황새의 집과 같은 절이다.

처음 이 터를 발견한 이는 문경에 사는 심충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덕망높은 스님이었던 지증대사를 찾아가 이곳에 절을 세워 달라고 부탁했고 지증대사는 친히 희양산을 답사한 후 『스님들의 수도처가 되지 않으면 도적떼의 소굴이 될 자리』라고 감탄하며 봉암사를 창건했다.

그후 봉암사는 후삼국의 혼란기에 문경 땅이 치열한 격전장이 되면서 폐허가 되었고 고려초 정진대사에 의해 복원됐다. 그후 봉암사는 여주의 고달원, 양주의 도봉원과 함께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3대 선원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했다. 봉암사의 융성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지증대사와 정진대사의 부도와 탑비다.

지증대사 부도는 웅장한 규모 못지 않게 세부 조각이 힘차고 아름다운 걸작이다. 탑비는 최치원의 사산비명(사산비명)중의 하나로 남한 최고의 금석문으로 꼽힌다. 정진대사의 부도는 치밀한 조각솜씨는 떨어지지만 기품이 당당하다. 이밖에 3층석탑과 백운대 마애불좌상등 볼거리가 많다.

교통편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문경가는 시외버스가 10분 간격으로 있다. 문경터미널에서 가은읍을 거쳐 원북리까지 가는 군내 버스를 이용한다.<이형권 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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