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교민사회 “인술의 등대”/유학생 등 이국 병고 보살피기 20년/딸 고국 유학보낼 만큼 자긍심 대단『지난해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연수중 건강을 해쳐 쓰러졌던 K모양이 한국에서 몸을 회복했다는 소식에 큰 보람을 느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56호 병원에서 내과 전문의로 근무하는 최 클라라씨(46)는 교민사회에서 「백의의 천사」로 불린다. 90년 한·소 수교이후 모국으로부터 몰려온 외교관 상사주재원 유학생들이 생소한 이국땅에서 겪어야 하는 건강 문제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K양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95년 5월 어느날. 쓰러진 K양을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한 결과, 개복 수술이 불가피한 병임을 알게 됐다. K양은 그의 도움으로 수술실에 들어갔으나 종양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이에 최클라라는 병원과 관계당국을 뛰어다니며 K양이 한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곳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다 언어소통마저 안돼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때 최클라라가 자기일처럼 도와 준다』고 상사 주재원들과 유학생들은 입을 모아 고마워한다.
최클라라는 타슈켄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탓으로 모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한국어에 능통하다. 『배가 살살 아프다』와 같은 해외 교민들이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묘한 뉘앙스의 말까지 이해한다.
『현지인들도 병원에서 주사 한대 맞기가 쉽지 않은 것이 러시아다. 복잡한 절차를 거친뒤 약속시간에 주사실로 가 정확한 약 이름을 대야 하는데 자칫하면 엉뚱한 주사를 맞고 나오기 십상이다』
병원을 찾은 한인을 돕는 단순한 일에서 시작한 그의 활동은 곧 교민사회의 「공중의」역할로 확대됐다. 최클라라는 현지인들 마저 치료약을 구하기 어려웠던 91∼93년 한인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약을 구하기 위해 시내 병원들을 뛰어 다녔고 한밤중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진 유학생을 자기 병원의 앰뷸런스로 실어나르기도 했다. 입원환자의 경우 치료상황을 상세히 파악해 보호자에게 전해주는 친절도 기꺼이 했다.
69년 레닌그라드 국립의과대학으로 유학, 어려운 의대과정을 마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0년째 의술을 펴고 있다. 그는 모국땅을 직접 밟지는 못했지만 딸 최안나양을 서울대학교 한국어과에 교환학생으로 보낼만큼 한민족의 긍지를 지니며 살고 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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