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가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한 「이른 봄」은 꿩 한마리를 일인칭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우화적인 수법에 의거해서 씌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우화적인 수법을 구사한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사문학의 역사속에서 실로 숱하게 발견되고 있는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법은 오늘날에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지금 새로 씌어지고 있는 동화나 만화들을 보라. 그 예가 얼마든지 발견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어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씌어진 우리 시대의 본격적인 서사문학 작품속에서도 이러한 수법은 종종 구사되고 있는 터이다. 그러니만큼 「이른 봄」에서 성석제가 꿩을 등장시켜 이야기 한 자락을 펼쳐놓은 것은 그것 자체로서는 하등 새로울 바가 없는 일이다.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결론으로서 「이른 봄」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작품은 성석제라는 재주 많은 작가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잘 보여준 개성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우화적인 수법을 구사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작품들로부터 이 작품을 구별지어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같은 수법을 사용한 작품은 모름지기 모종의 도덕적이거나 현실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고대의 우화에서부터 현대의 여러 이름난 우화체 소설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견고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는 그와 같은 고정관념을 성석제는 여기서 거침없이 폐기해 버리고 있다. 그렇게 한 결과로 획득된 자유를 가지고 그는 냉철하게 이 세상의 실체를 꿰뚫어 본다.
그리고 자기가 본 세상의 모습을 경쾌한 언어로, 그러면서 조금의 과장도 없이, 형상화한다. 여기서 내가 「세상」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은 좁게는 인간의 세상을 가리키며, 넓게는 인간의 세상을 포함한 자연계 전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말의 뜻을 좁게 해석하든 넓게 해석하든 궁극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깊이 생각해 보면, 좁은 의미에서의 세상이나 넓은 의미에서의 세상이나 그 기본적인 성격은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석제가 「이른 봄」 속에서 냉철한 리얼리스트의 안목을 가지고 형상화해 놓은 세상의 모습을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평소에 우리를 부단히 현혹시켜 왔던 갖가지 화려한 관념의 베일들 저 너머를 투시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 내의 생명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삶과 죽음의 운명에 대하여 진지한 명상을 행하는 귀중한 경험을 가질 수 있다.<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교수>이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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