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최대의 논객 가운데 한 사람인 하버마스의 방한은 그의 이름 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남겼다. 방한기간 그는 국민국가 정보사회 시민사회 근대성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 실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우리에게 의사소통행위이론 또는 담론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하버마스는 이념의 공백, 사상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한국인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귀한 손님이었다. 그러나 듣자 하니 많은 청년학생들과 상당한 지식층까지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몇몇 질문 답변을 제외하고는 하버마스의 치열한 사고에 육박하는 의미있는 논쟁은 없었다고 한다.80년대 한국에서 그는 좌익으로부터는 변절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매도되었고, 보수우익으로부터는 위험한 신좌익사상가로 낙인찍힌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저서를 단편적으로 소개하거나 일도양단의 평가는 있어도, 한국에서 그의 고민의 역정을 그 자체로서 학문적으로 철두철미 파헤친 연구서나 그의 사고가 우리의 현실에 수용되기엔 한국사회의 내재적 조건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자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법치와 우리현실
나는 하버마스가 한국체재중에 행한 강의록을 읽고 우선 두 가지 점이 생각났다. 그 하나는 하버마스의 법리론에 대해, 좀 더 깊이있는 논의를 했었더라면 하는 점이다. 이번 방한중 8회에 걸친 학술행사에서도 이미 알려진 사회적·철학적 주제가 대부분이고 그의 최근의 관심사인 법사상에 대한 토의는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는 사상이 성숙함에 따라 초기의 철학적 담론을 넘어 후기에는 법에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론」에서 철인왕을 내세웠던 플라톤도 아예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키지 않은 「법률론」으로 끝을 맺었고, 칸트는 3가지 이성비판을 거쳐 말년에 영구평화에 접근하기 위한 세계시민법의 제정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하버마스는 포퍼와의 실증주의논쟁, 가다머와의 해석학논쟁 등 까다로운 학문적 논쟁을 거치면서 종국에 와서는 억압적 의사소통체계를 「민주적 법치국가의 대화이론」으로 풀어보려 하고 있다. 하버마스사상의 도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법치를 우리의 현실에서 따져보는 생산적인 토론이 없어 못내 아쉽다. 왜냐하면 신의 구제나 철인왕의 통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예나 지금이나 참다운 의미의 법치는 인간사회를 이성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하나는 한국사회에서의 시민사회론과 민족주의와의 관계에 대해서다. 이 문제에 관한한 하버마스와 평균적 한국지식인 사이에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하버마스 자신도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아 민족주의가 민주주의 생성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민국가는 그 성공의 수단이었던 민족주의에 내재하는 불투명한 잠재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의 망령이 하버마스의 뇌리를 떠나기 어렵다는 것도 알만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후 제3세계의 경험에서 보면 민족주의의 잠재력은 너무나도 투명하다. 그들의 반식민 반제 민족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와 모순되지 않았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더욱 그러하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예외없이 성실한 민족주의자였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한국역사의 특수성에서 우러나온 행동원리이며 유럽에서 국민국가의 틀이 깨지고 있고 이른바 무국경성의 세계적 현상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을 통합할 수 있는 무서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미, 일, 중, 러등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반도국가라는 점과 냉전형 분단국이라는 압도적 제약조건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외적인 조건이나 충격에 대응하는 내생적인 에네르기가 바로 한국민족주의의 저력이다.
○민족주의의 저력
이렇게 볼 때 한국의 민족주의는 추상적인 정치이념이나 전체주의적 신화가 아니라 한국인의 삶의 조건이요, 생존전략이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북녘에서는 주체사상이라는 형태로 버티고 있고, 남녘에서는 위로부터는 개발독재형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아래로부터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권위주의체제의 붕괴, 민주주의에로의 이행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바깥으로부터의 엄청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인은 민족의 에네르기를 결집했고, 그 결과 산업화도 해냈고 민주화도 이룩한 것이다. 앞으로 세계화에 적응하고 내부사회의 민주적 통합을 이루면서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도 민족주의는 한국정치의 다이너미즘의 원천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주의, 특히 밑으로부터의 민족주의는 하버마스가 일관되게 부르짖고 있는 시민사회의 구축을 위해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 하버마스와의 대화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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