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4자회담제의 한달이 지나도록 회담을 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여부에 관해 말이 없다. 검토하고 있다는 말밖에 없다.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북이 지금 기존정책을 쉽게 바꿀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한국의 김영삼정부와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남한을 제치고 미국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을 그동안 기본노선으로 삼아 왔다. 김정일은 고위정책회의를 갖지 않은 지가 오래이다. 문제를 토의하는 최고정책의결과정이 없어진 것이다.각 부서에서 상황을 서면으로만 보고하고 이를 김정일이 3가지종류로 처리하는 이른바 서식보고가 북한정책결정 형태이다. 김정일은 각 부서로부터 서면보고를 받으면 서명하든지, 날짜만 쓰든지, 논평을 붙이든지하는 3종류로 결재한다. 날짜만 쓰는 것은 그저 서류를 봤다는 인지의 뜻이고 논평은 재지시를 의미한다. 중대한 외교노선을 바꾸는 결정 같은 것을 쉽게 내릴 수 없게 돼 있다. 김정일은 한밤중에 고위인사들을 불러들여 상황설명을 듣곤 하지만 이 것으로는 중대결정을 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둘째는 국제환경이 보다 유리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북한은 4월의 한국선거에서 북한동조세력이 대거 국회에 진출하기를 바랐다. 나름대로 계산을 해 휴전선을 침범하는 공작도 했었다. 남은 것은 11월의 미국선거가 있다. 미국 선거가 본격화하면 클린턴은 대북한외교를 선거 전에 이용하려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북한은 같은 4자회담을 수락하면서도 뭔가 미국으로부터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미국선거는 국내여론뿐 아니라 국제여론도 변수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이나 과거의 대만정부같은 경우는 선거철이면 공공연히 지지후보를 선정하고 막대한 선거자금을 뿌렸다. 지금은 외국정부의 활동을 제약하는 법조항이 있어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로비는 허용되고 있다. 선거를 여론수렴과정으로 보는 것이 미국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대미외교개념을 기왕에 성립된 정책을 변경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법으로 통과돼 문제가 되면 그때에 부랴부랴 외교사절을 보낸다. 잘못된 것이다. 미국은 여유가 많고 무슨 일이든 타협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법이 제정될 때까지의 과정에서와, 여론이 모아지기 전 단계까지이지 한번 법으로 결정되어버리거나 결정적으로 여론이 형성된 이후에는 타협이 없다. 여론형성 과정이나 법 제정과정에서 로비는 할 수 있지만 결정된 법을 변경하거나 결정된 정책에 맞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반도문제 해결에서 아직도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측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대북한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김정일체제를 망하게 하는 것인지 흥하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통일을 바라는지 안바라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만일 한국이 북한체제의 안정을 바라더라도 현 김정일체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 결론을 갖고 미국의 여론이 모아지는 단계인 선거철에 뛰어야 한다. 통일이 되면 미국에도 유익하다는 논리를 선거과정을 통해 설명해 미국정치인들이 한국의 남북통일정책을 돕도록 해야 한다. 선거를 지켜본후 결정하겠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된다.<정일화 편집위원겸 통일연구소장>정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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