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범인 도피가 가능한 지역의 경찰에 공조를 요청, 체포에 경찰력을 집중 투입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그런데도 우리 경찰은 이를 번번이 무시해 사건해결의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한마디로 혼자 공을 세워 특진과 포상 등의 영예를 독차지하기 위해서라는 오해를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지난 20여일동안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을 불안속에 몰아넣었던 연쇄납치범들의 검거 과정에서도 바로 이런 「악습」이 되풀이되면서 또 한번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8명이나 되는 일당들 가운데 주범이 낀 3명을 다 붙잡은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공조」미비로 놓쳤던 것이다.
사실 이번 사건은 발생초기부터 경찰의 태세에 큰 구멍이 뚫렸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범인들이 서울·경기·충남 일원을 활개치며 7차례나 범행을 저지르고 있을 때도 관할 경찰은 서울본청에 보고조차 제대로 안해 수사공조를 이루기는 커녕 지역별로 따로 놀았던 것이다.
사건발생 2주후인 10일 서울 양재동의 데이트 남녀납치사건 직후에도 범인들이 충남 아산에 은신해 있었는데 경기 경찰청에만 협조를 요청했는가 하면 범인들이 그곳을 떠났음이 신문에 보도된 뒤에서야 전국일원에 비로소 뒤늦게 공조수사를 지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양재동 납치사건때 사용된 차량이 그전 범행에 쓰인 차량과 같음이 드러났음에도 그 사실을 다른 경찰에 알리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 예일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의 경위를 보며 다시한번 경찰의 허술한 수사체계와 자세에 대해 의구심과 함께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지난 총선이후 납치 강도 성폭행 등 각종 강력범죄가 다발, 민생치안이 말 못할 만큼 어수선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무서워서 밤거리에 나갈 수 없다고 푸념한지 오래인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불안을 감지한 탓인지 지난 15일 경찰은 갑자기 민생치안의 세계화를 표방하며 우리 사회를 불안없게 지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의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수사와 범인체포가 공조미비로 마냥 겉돌고 있었던 것이다.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은 흉악범 일당중 4명을 뒤늦게라도 경찰이 체포할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럽다. 이제는 주범을 포함한 나머지 4명의 체포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경찰의 생명은 투철한 사명감과 전문성, 그리고 국민의 신뢰다. 경찰이 신뢰받는 민중의 지팡이로, 민생치안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려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거듭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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