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이태준,이상의 경우/죽음의 병이 「문학 황홀경」 지름길/예술로 얻은 「궁핍의 세계」로 여겨/나도향의 요절에 낭만파는 절정을 맞고/이태준은 사이비 세련성으로 자기 최면도/이상에 이르러 비로소 자기 소모로 인식객:아무리 문학사라 해도 문학을 논의하는 마당이니까 약간의 일탈이랄까 문학의 육체도 그리워질 법한데요. 통상의 이데올로기나 논리로는 좀처럼 회수되지 않는 영역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물레방아」(1925), 「벙어리 삼룡이」(1925)의 작가 나도향(1902∼1927)을 아시겠지요.
객:「백조」 동인이며 20세에 장편 「환희」(동아일보, 1922.11∼1923.3)를 썼고 만25세에 요절한 천재작가 아닙니까. 수필 「그믐달」은 한때 교과서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요절했기에 천재냐, 천재이기에 요절했는가. 좌우간 요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주:「미는 진실이며 진실이 미/ 지상에서 알만한 것은 이뿐」이라 외치며 죽어간 영국시인 키츠(1795∼1821)는 26세, 비단망태기를 짊어지고 다니며 쓴 시를 거기에 넣고 다닌 당시인 귀재 이하(790∼816)가 죽은 것은 26세.
객:박제가 되어 버린 우리의 천재 이상이 27세에 갔고….
주:무엇이 이들을 요절케 했을까. 당나라의 사정까지는 알기 어려우나 근대문학의 저러한 천재들을 요절케 한 병명은 뚜렷하지요.
객:(폐)결핵 말씀이군요.
주:그냥 결핵이 아니라 깃발처럼 횃불처럼 휘황하게 휘날리는 병. 결핵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지요.
객:횃불처럼 깃발처럼 결핵이 휘황하게 펄럭이었다 함은 무슨 뜻인가요. 실상 결핵이 주인공이고, 문인 아무개라든가 그가 쓴 작품 따위란 한갓 그림자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주:나도향이 죽었을 때 전문단이 애도해 마지 않았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향애사」(정인보), 「추억도향」(이은상)을 비롯 월탄, 서해, 김동환, 박팔양(김여수), 김억, 김팔봉, 염상섭, 이태준 등 당대 중요문인 전부가 애도사와 추억담을 썼지요. 가히 전문단적 사건. 신문학이래 문인의 죽음이 처음으로 문학적인 자각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
객:그 죽음이 다름아닌 문학이라는 지적입니까.
주:그렇소. 죽음이 곧 문학이라는 등식. 말하자면 죽음과 문학의 등가성의 인식.
객:비약이 좀 심한데요. 죽음과 문학이 등가라면 이렇게 되겠군요. 「그 죽음이란 곧 결핵이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무엇인가. 바로 결핵으로서의 문학이 아닌가」라고.
주:우리가 말하는 서구의 근대문학이란, 여러 가지 종류의 갈래가 있을 수 있겠는데, 그 중의 한 가지에 결핵(죽음)과 관련된 것도 있다는 시각에서 보면 어떠할까.
객:결핵의 속성을 가진 문학의 갈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결핵의 메타포(은유)로서의 문학이라는 것. 서구 낭만주의문학이 이에 엄밀히 대응되고 있다는 것.
주:나도향의 죽음이 전문단적으로 인식되었음이란 분명 문학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지요. 어째서? 백조파의 화려한 낭만주의 또는 데카당한 세기말문학으로 규정되던 문학이 나도향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끝장난 것이니까.
객:「백조」파에서 그 절정을 이룬 유미주의랄까 탐미주의랄까 감상주의라 불리는 종류의 문학이 끝장났다 함은 곧 새로운 문학의 도래를 예감하는 것. 무슨 눈엔 뭐만 보인다고, 선생이 말하는 그 잘난 문학사적 안목이 또 개입했군요.
주:너무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다만 저는 실증적인 부분을 살펴볼 뿐. 백조파란 무엇이겠는가. 배재, 휘문 두 고보 출신들 중심으로 모인 문학운동지. 중인계층 출신들. 문학(예술)이 뭔가 고상한 것, 신성한 것, 좌우간 대단한 구원으로 보았던 청소년집단이라고나 할까. 3·1운동을 중학수준에서 체험한 그들인 만큼 「창조」나 「폐허」 파와는 한 사이클 뒤에 나온 이들에 있어 문학이란 「흑방비곡」(월탄) 「월광으로 짠 병실」(회월), 또는 「나의 침실로」(상화) 등에서 보듯 갈 데 없는 환각의 세계 아니겠는가. 외나무 다리 저편에 있는 부활의 동굴 속으로 도피하기, 병실(밀실) 속에서 비로소 황홀경을 찾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객:스스로 환자되기, 그 환각이 바로 문학이다, 그러니 병을 앓아야 한다, 그 병에 감염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병이 곧 문학이다!
주:현실에는 없는 그 환각(황홀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병에 감염되어야 했는데 결핵이 그것. 이런 현상이 나도향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났음에 주목할 것. 서울 청파동 중인계층(한약방) 출신의 나도향이 배재고보를 나와 경성의전에 진학했으나 중퇴, 문학을 택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는가는 월탄의 지적대로 적빈(적빈) 그것. 결핵이 그 지척에 놓여 있지 않았겠는가.
객:결핵이라면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의 대명사였겠지요. 오늘의 에이즈모양이라고나 할까. 환각(문학)의 절대경이란 불치의 병이 아니면 안되었다?
주:한 장면을 떠올려 볼까요. 여기는 도쿄 우에노역 바로 윗정거장인 닛보리(일모리) 근처 동백꽃 핀 작은 동산. 때는 1926년 봄. 두 조선청년이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한 청년이 각혈을 하지 않겠는가. 동행하던 청년은 멈칫 떨어져 걷지 않겠는가. 각혈한 이가 나도향, 함께 걷던 청년이 이태준.
객:불치의 병이 지닌 최대의 매력이 감염성이라는 것, 죽음에 이르는 이 병이 지닌 이 절대적인 매력.
주:여기는 도쿄, 조선인 고학생들이 모여 사는 자취방 우애학사(우애학사). 동칙손(동즉손·움직이면 손해)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오몽녀」(1925)의 작가 이태준, 김지원, 나도향 3인. 어째서 나도향이 이 틈에 끼여 있었을까. 기자직을 잃고 고료만으로 살던 나도향이 소설공부차 도일하였으나 호구지책도 어려웠고 이미 결핵이 깊어 있었다. 재도일한 염상섭이 본 바에 따른다면 자기의 병을 익히 아는 나도향은 홧김에 술도 마시고 담배도 빨았다(염상섭의 증언). C라는 여인을 짝사랑하여 마지 않았다. 최후작 「피묻은 편지 몇 쪽」(1926)의 집필현장에 있던 이태준은 기침으로 숨막히는 목소리로 나도향이 읽어내려가던 C에게 보내는 연서를 듣고 또 들어야 했다.
객:결핵으로 죽는 것, 죽음에 빨리 그리고 철저히 이르기야말로 문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의식, 그것이 나도향의 죽음으로 일단락되었다. 여기에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그 결핵이란 무엇인가.
주:낭만파문학의 메타포라 할 수 없을까. 결핵을 매개로 한 문학이 낭만파문학이라 함은 18세기 중반 이후 널리 퍼진 사상이었지요. 건강함이란 야만스러움이며 세련된 성품의 감수성은 병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도출된 이 취향의 유행이 낭만파문학을 낳은 모태였지요.
객:그렇다면 결핵의 비참함과는 관계없는 취향의 일종이었다는 것입니까. 병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논리의 패러다임에 관련된 것이겠군요.
주:셸리와 키츠가 이 병에 잔혹하게 당했거니와 셸리가 키츠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결핵이 그대같은 멋진 시를 쓰는 자를 좋아한다」라고. 문제는 결핵이라는 병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 코흐의 병원체 발견이래 얼마든지 치유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럼 어디 있는가. 결핵이 현실적인 육체의 병과 분리되어 하나의 메타포로 사용되었음에 있지요. 이 메타포에서 해방되지 않는한 결핵은 정복되지 않는다는 것(S. 손탁, 「메타포로서의 병」, 1977).
객:아, 알겠다.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이태준에 와서 비로소 우리문학은 낭만파문학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명제.
주:나도향에 있어 결핵이 가문(전통)을 버리고 가출(예술)함으로써 얻어진 그 무엇의 메타포였다는 것, 그 얻어진 세계가 궁핍이었다는 것, 이것이 비극적인 것은 궁핍이 근원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시대적 혹은 식민지적 궁핍으로 한정된 까닭. 나도향의 죽음이 전문단적으로 애처로움의 범주에서 인식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되지 않았을까. 결핵이 근원적인 의미층으로 인식된 것은 이태준에 와서야 아닐까. 「까마귀」(1936)에서 이 점이 뚜렷하지요.
객:독신작가가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인텔리여성을 관찰하는 작품.
주:글쓰기(소설)가 바로 황홀경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이 독신작가의 존재야말로 주목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장정 고운 신간서」같이 생긴 여인과 그것이 풍기는 세련된 분위기. 글쓰기가 그럴 수 없이 즐겁다는 이 자기황홀증 환자가 거는 자기최면, 그것이 「무서록」의 세계이고, 「문장강화」의 저 도도한 의고체스타일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 사이비 세련성을 예술성이라 착각하지 않았을까. 한 대목을 볼까요.
「폐병! 그는 온전한 남의 일같지 않게 마음에 씌었다. 그렇게 예모있고 상냥스런 대화를 지껄일 수 있는 아름다운 입술이 악마같은 병균을 발산하리라는 사실은 상상만 하기에도 우울하였다. 그러나…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즐거웠고 될 수만 있으면 그를 위로해 주고 그와 더불어 자기의 빈한한 예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까마귀」).
객:그렇다면 「스물 세살이오, 3월이요, 각혈이다…」(「봉별기」, 1936)라고 외치는 「날개」의 작가 이상은 어떠합니까. 선생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부근이겠는데….
주:그렇소. 신간서 장정의 멋진 세련성 따위가 아니라 그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겠는가. 메타포로서의 결핵의 「내용」, 그것은 자기소모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소비, 낭비, 생명력의 소모등 자본주의의 마이너스적인 측면에 이상문학이 대응되었던 것. 방법으로서의 결핵이었지요. 이상문학에 이르러 낭만주의문학이 극복되었다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입니다.<김윤식 서울대교수·문학평론가>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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