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정책 차질·지역 이기주의로 발전소 제때 못세워/화전 최대가동·절전대책 불구 “연례 행사화” 불가피여름철에 출고된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사지 말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94년 여름에 나온 말이다. 이때 전력예비율은 사상최저인 2.8%를 기록했고 전력공급이 원활치 않아 자동차생산라인에도 양질의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로봇이 별난 행동을 해 불량제품이 양산되는 사례가 많은데서 나온 말이다. 또 고른 전압의 전기가 필요한 반도체 및 가전공장에도 이상전기가 공급돼 말썽을 빚기도 했다.
전력난은 이처럼 부채질로 더위를 견디는 고통을 뛰어넘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넘어선 올해도 또다시 부채를 준비해야 할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올 여름 정상기온시 예비율은 4.7%, 이상고온시에는 1.6%로 전망되고 있다. 이상고온시 여유전력은 56만㎾에 불과하다. 원전 1기가 100만㎾를 공급하니 한달에 한번 꼴로 고장나는 원전이 평소대로 올 여름에도 고장나면 제한송전은 피할 수 없다.
여름 전력난이 94년 이후 3년째 연례행사화한 것은 발전소건설 부진으로 공급능력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장기 수요예측(90∼94년의 경우 연평균 12.2%증가)이 잘못돼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며 발전소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매년 여름 고질적인 전력난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의 지적대로 최근의 전력난은 빗나간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에서 비롯됐다. 93년 정부는 96년 전력수요를 2,850만㎾로, 91년 전망치(2,875만㎾)보다 줄여잡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해에 전력파동이 일어났고 95년에는 올해 수요를 3,200만㎾로 잡았다가 올초 다시 3,482만㎾로 올려잡았다. 2006년 장기예측은 더욱 황당한 상태다. 이렇게 예측이 들쭉날쭉하다보니 장기전력수급정책에 차질이 생겼고 제때에 발전소를 건립할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여기에 90년대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역이기주의로 계획이 확정된 발전소도 건립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지난 연말 착공키로 한 전남 영암 원전 5, 6호기는 아직도 첫 삽조차 못뜨고 있다.
소비자쪽에도 문제는 있다. 전력사정이 어려운데 가정은 절약이 몸에 배어 있지 않고 기업은 에너지효율이 낮은 생산기기 일색이다.
통상산업부는 16일 부랴부랴 전력수급안정대책을 내놓았다. 보령화전등 우수한 화력발전소 12기를 상향운전해 공급능력을 추가로 확보하고 각종 절전대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절전대책을 보면 일정기준의 절약을 하면 전기요금을 20%정도 깎아주는 자율절전요금제도의 대상을 현행 계약전력 5,000㎾이상 수용가에서 1,000㎾이상 수용가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력수요가 몰리는 7월말 8월초에 집단으로 휴가를 가거나 보수작업을 위해 공장을 쉬는 업체에도 추가로 10%정도 요금을 내려줄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이 어느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이백규 기자>이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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