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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유태인/최종고(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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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유태인/최종고(한국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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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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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국에서 국내소식을 들으면 마치 집안에서의 닭싸움이나 도토리 키재기같다는 느낌이 든다.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여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당선자를 마구 영입하려 한다고 야당이 총반격하여 국회가 개원되기도 전에 정국이 다시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뉴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민족적 숙원인 남북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건설적 탈출구가 없어 사회심리적으로 가학과 음해가 심해져가는 것 같기도 하다. 밖에서 보니 이런 서글픈 자화상이 극명하게 비쳐진다.해외에 있다고 국내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없고 어쩌면 더욱 국내정치가 잘 되기를 갈망하는 애국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매사를 조국의 발전과 장래와 결부시켜 생각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한국이 어떻게 세계 속에서 살기 좋은 나라로 생존해나가느냐는 문제로 귀착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과 집안이 잘 살면 되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세계라는 보편성의 잣대 위에서 한 인간으로, 한 민족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된 길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승부는 정신문화

한국인을 가끔 「제2의 유태인」이라고 부르는데 과연 한국인이 얼마나 유태인과 같고 다른지 막상 찾아보니 연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가 성행함에도 유태인과 이스라엘에 관한 연구가 빈약하다는 것은 왜일까? 이사야 벤다산이 쓴 「일본인과 유태인」이라는 책에서도 일본인은 유태인과 많은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한국인도 유태인과 크게 다르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함석헌선생이 한국사를 유태인처럼 고난의 역사에서 뜻을 찾아야 한다고 해석한 것은 그야말로 「뜻으로 본 한국사관」이라 할 것이다. 한국인도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스스로 「제2의 유태인」으로 자처하는지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유태인이 버리고 간 막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핵심적 상권에 들어가려면 유태인의 견제가 심하고, 특히 지식산업이나 고급사회는 유태인의 두뇌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지금 미국에 있는 한국교포들은 과거보다 경기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듯 보인다. 여기에서 해외교포의 생존전략이나 발전계획을 논할 처지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정신문화, 고급문화를 얼마나 정착시키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고 판단된다. 교포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이제 한국인으로 외국에서 사는 부모와 자식에게 어떻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전승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제2의 유태인」이 되느냐 아니면 「제2의 일본인」이 되느냐는 문제도 심각히 부각된다. 물론 「경제적 동물」이란 낙인아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최근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한국에서의 유교와 법」을 강연하고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해 외국학자들과 토론하였다. 외국학자들은 한국에서 유교가 지난해 11월 종교로 선언한 사실에 크게 주목하고 유교문화권으로서의 한국의 발전에 비상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하버드대의 철학교수 두웨밍박사(두유명)도 최근 저서 「동아시아 근대성 속의 유교적 전통(Confucian Traditions in East Asian Modernity)」에서 「유교 르네상스」를 주장하면서 한국인은 개신교가 국민의 35%에 이를만큼 급성장했지만 전국민의 유교적 종교성을 어떻게 시민종교(Civic Religion)로 정착시켜야 하는가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유교 현대화 작업

우리가 어떤 특정 종교의 승패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민족이 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존번영하려면 어떤 정신문화를 정립해야 하는가를 종교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처럼 국가이데올로기로서 단군을 교조화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한국의 오랜 전통인 유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생활윤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중국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에서도 유교의 현대화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학계에서도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국유교의 종교선언이후 최근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종교화가 폐쇄적 도그마(Dogma)를 뜻해서는 아니되고 세계윤리로서의 개방성과 탄력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종교가 지녀야 할 지·정·의의 3요소를 골고루 갖춘 문화성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사실 서양에서 보면 이슬람교나 불교보다 유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유교는 개신교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어쩌면 한국개신교가 샤머니즘화하기보다도 건전한 유교와 대화를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한국정부는 해외동포의 2세, 3세가 정신적 방랑인이 되지 않도록 고차원의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정치에 해외 디아스포라(Diaspora)의 지원이 국내 예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본다면, 세계 속의 한민족공동체가 번영해 나가야 할 방향을 알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한국인과 유태인은 깊은 연구과제이다.<프라이부르크에서 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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