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 「군번없는 유격대」 1,005위/「켈로부대」로 불려… 적7만여명 섬멸전과6·25 당시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펴다 숨진 유격대원 1천5위에 대한 위패 봉안식이 15일 대전 국립묘지에서 열렸다.
6·25 당시 주한미8군 연락처(KLO:KOREAN LIASION OFFICE)소속으로 영문약자의 발음을 따 「켈로부대」로 불린 유격부대는 주로 38선 접경및 북한지역에 거주하던 청년 학생들로 구성됐다.
1·4후퇴를 전후해 4만명에 달하던 이들은 지역 유격부대를 편성, 휴전때까지 빛나는 전과를 올렸는데 대표적인 부대가 「돈키부대」와 「울프 팩」. 강화·교동에서 1만2천여명, 속초·주문진 등에서 6천여명이 활동한 이 두 부대는 지역에 따라 「구월산」 「백호」 「커크랜드」 「타이거여단」 「활민」등으로 불렸다.
켈로부대는 군사정보 수집, 게릴라전을 통한 북한군 시설파괴 등 적후방 교란, 조종사 구출및 피란민 수송 등에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이들의 공로는 미육군이 84년 9월 2급 비밀문서를 공개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기록에 따르면 유격대원들은 휴전 때까지 총 4천4백45차례의 전투를 벌여 적 7만여명을 섬멸했다. 북한군은 이들의 활약 때문에 2개 군단을 후방에 묶어두어야 하는 전략적 타격을 입었다. 유격부대의 손실도 엄청나 전쟁 기간에 총 1만여명이 전사 또는 실종됐다. 이들은 휴전후인 54년2월 7백53명이 장교로, 1만2천여명이 사병으로 육군에 편입되면서 해체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시신이 없는 전사자는 국립묘지에 봉안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40여년을 구천에서 헤매야 했다. 지난해 6월에야 전사한 무명 유격대원 2천4백10위의 위패가 대전국립묘지에 봉안됐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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