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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노모의 「살인」(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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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노모의 「살인」(장명수 칼럼)

입력
1996.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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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누가 아니랬나요?』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통념은 『가정 폭력은 가정 문제이므로 제삼자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거나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것등은 이웃이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고, 고발하거나 처벌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50대 남자가 최근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는데, 경찰은 각기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아내와 장모 사이에서 헤매다가 뒤늦게 장모를 진범으로 구속했다. 장모는 71세의 노인이었고, 먼저 구속됐다가 풀려난 딸은 늙은 어머니를 감옥에 보낼 수 없어서 거짓 자백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야기는 자칫하면 서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우기는 슬픈 모녀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그러나 그 사건의 핵심은 「방치된 가정폭력」이다. 사건이 나자 이웃주민들은 그 집에서 거의 매일같이 이루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술주정과 폭력이 난무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폭력」을 남의 가정문제라고 외면했다. 매맞는 딸을 더이상 볼 수 없어 칠십노모가 칼을 들 때까지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았던 것이다.

여자를 납치한 범인들이 백주대로에서 여자를 폭행하며 끌고가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가정폭력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여자를 왜 때리느냐』고 용감한 시민들이 나섰다가도 『이 여자는 내 마누라다』라고 거짓말을 하면 물러서기 때문이다. 마누라이든 동생이든 자식이든 간에 심한 폭행은 제지해야 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물론 동물까지도 때리거나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목격하면 즉시 경찰에 고발하는 서양인들을 지나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폭력이나 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없는 사회는 문명사회가 아니다. 가정폭력은 가정문제일 뿐이라고 외면하는 사회에서 정의니 도덕이니 외쳐봤자 그것은 허울좋은 슬로건일 뿐이다.

첫 결혼에서 모질게 매를 맞다가 이혼한 딸이 두번째 만난 남자로부터 다시 폭행당하는 것을 보다 못한 노모는 사위를 칼로 찔렀다. 사회로부터 전혀 도움받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절망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폭력은 외부로부터 단절된 상황에서 지속적인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일반 폭력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 『내 마누라 내가 때리는데 무슨 참견이냐』는 말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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