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러 붉은광장 군사퍼레이드 재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러 붉은광장 군사퍼레이드 재개

입력
1996.05.08 00:00
0 0

◎대서방 화해 제스처 일환으로 중단 5년만에/사관생도·은퇴노병 등 7,000명 참여 연습돌입/“러 자존심 회복” 옐친 선거전략활용 계산도러시아군은 승전기념일인 9일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재개한다. 모스크바 군관구(MBO·관구 사령관 레오니드 쿠즈네초프 대장)는 승전 51주년을 맞아 91년 이후 5년만에 붉은광장에서 전통적인 군사퍼레이드를 다시 갖기로 하고 국방장관의 허가를 얻어 모스크바 외곽의 「호딘스코에 폴레」에서 연습에 들어갔다. 이번 군사행진에는 7,000여 병력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MBO의 핵심 연대를 제외하면 각급 사관학교 생도들과 은퇴한 노병들, 각급 군악대 등으로 구성돼 예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붉은 광장에서의 군사퍼레이드는 공산 혁명 직후인 1918년 5월1일부터 시작됐다. 첫 퍼레이드는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공산당 구호에 따라 노동절인 5월1일 노동자들의 혁명열기를 북돋우기 위한 준군사적 시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시위대를 선도한 군부대가 붉은광장을 떠나 혁명군 군사퍼레이드가 진행된 「호딘스코에 폴레」로 행진, 혁명군 군사퍼레이드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붉은광장의 퍼레이드는 승전기념일인 5월9일로 바뀌었고 냉전시절 서방에 대한 구소련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방편으로 활용됐다. 또 구소련의 공산당 간부들이 레닌 묘위에 설치된 연단에 도열해 군사행진을 관람하며 군의 사기를 높였었다. 서방 언론들은 이날 연단에 나타난 공산당 간부들의 면면을 확인한 뒤 크렘린내 권력투쟁의 결과와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하곤 했다.

이후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서방에 대한 화해 제스처의 일환으로 붉은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중단했다.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인 지난해의 승전 50주년 기념식에도 붉은광장에서 군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승전 50주년 기념식이 모스크바로 옮아왔으나 빌 클린턴 대통령등 각국 정상들이 러시아군의 체첸침공을 이유로 붉은광장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재개할 경우 기념식 불참을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측은 어쩔 수 없이 승전 50주년 기념식을 위한 군사퍼레이드를 「포골론나야 고리」에서, 붉은광장에서는 각국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은퇴한 노병들의 기념행진을 열었었다.

하지만 러시아정부도 지난해 12·17총선을 계기로 러시아의 자존심을 되찾아야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자 붉은광장에서의 군사퍼레이드를 굳이 막아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옐친행정부는 모스크바 군관구의 독자적인 군사행진을 통해 국민적 화합을 모색하고 이를 표로 연결시키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 듯 하다. 5년만에 재개되는 군사퍼레이드는 그 성격이 약간 변질된 채 붉은광장을 가득 메울 것으로 보인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