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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강직한 참군인”/타계 한신 전 합참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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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강직한 참군인”/타계 한신 전 합참의장

입력
1996.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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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낙동강 방어전투 큰 전공/군용차 이용한 부인 질책 일화도6일 타계한 한신 전 합참의장(예비역대장)은 6·25때 큰 전공을 세웠고 이후 청렴강직한 생활로 군내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대표적인 원로장성이었다.

그는 22년 함남 영흥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일본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그는 46년 월남, 박정희대통령과 함께 육사 2기로 입학했다.

6·25발발 이전 북한군과의 옹진전투에서 대대장으로 참가해 전공을 세웠으며 6·25개전초기인 50년8월 낙동강 방어전투에서 수도사단 제1연대장으로 경북 안강·기계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둬 북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때문에 「방어작전엔 한신」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등 지휘관시절에는 장교들의 자질향상을 위해 간부교육대를 만들었는데 교육방식이 워낙 혹독해 이를 가리켜 「한신대학」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6군단장시절에는 서울서 면회오는 부인이 버스를 타고 포천 시외버스정류장까지 와서 군용지프를 타고 왔는데도 『사적 용무에 지프를 이용했다』며 노발대발하는 바람에 이후부터는 항상 걸어 다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또 평소 부대의 아무곳에나 불쑥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부식상태등을 지적하는등 급양감독을 유난히 강조,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배고프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예편후에도 그를 따르는 후배군인이 많았음은 당연하다. 윤용남 육군참모총장과 조성태 2군사령관이 그의 부관출신이다.

5·16 당시 모의 과정엔 참여하지 않았으나 동기생인 박정희최고회의부의장의 권유로 입각, 62년까지 내무장관을 지냈다. 63년 감사원장을 지낸뒤 다시 군으로 돌아와 군단장·교육사령관·2군사령관을 거쳐 69년 1군사령관에 임명됐다. 72년 합참의장으로 영전한 그는 75년 대장으로 예편한뒤 아세아자동차사장과 회장, 대한중석사장등을 지냈다.<홍윤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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