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가무의 신명과 시적 절제미열두살 꼬마가 열아홉살 각시한테 장가를 든다. 그러나 첫 날밤도 못 넘기고 소꿉친구의 환청에 이끌려 물에 빠져 죽는다. 각시를 비롯한 산 자들은 슬픔을 딛고 죽은 신랑과 소꿉이의 혼을 저승으로 떠나보낸다. 극단 민예가 이하륜 작·김태수 연출로 공연중인 「아리랑 정선」은 결혼과 죽음,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처럼 간단한 줄거리에 싣고 있다. 그러나 가슴아린 정선아라리 가락과 흐드러진 춤판, 또한 걸쭉한 육담이 있기에 무거운 주제가 부담스럽지 않고 간단한 줄거리가 싱겁지 않다.
이하륜의 희곡은 대부분 사실적 서양화보다는 몇 개의 선과 여백으로 이루어진 동양화에 가까우며 따라서 산문적 재미보다는 시적인 절제미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여백은 통상 연출이 채워야 하는 희곡 속의 행간 내지 괄호와는 전혀 다르다. 그의 희곡이 공연하기 어렵다는 평을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우선 연출은 여백을 메우고 싶은 유혹을 피해야 하고 다음으로 불과 몇개 선밖에 없는 듯한 간단한 본그림에 어떻게든 시적인 힘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시적인 힘의 토대가 되는 뛰어난 연기력과 전통가무의 능력을 겸비한 배우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민예는 우리 민족극의 명실상부한 원류로 70년대초부터 줄곧 「전통예술의 현대적 조화」를 추구하며 많은 업적을 쌓아왔고 따라서 능히 이하륜의 희곡을 소화할 수 있는 극단이다. 그것은 가녀린 신랑과 각시를 받쳐주는 선배배우들의 원숙한 연기로도 증명이 되지만 이용이(어미 역)의 깊은 소리와 강선숙(산골네 역)의 맛깔스런 춤, 또 조영선(지장구 역)의 구수한 장단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다만 아쉽다면 여러 긍정적 요소들이 산술적 합계 이상의 효과를 보일 만큼 충분한 조화를 이루어 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즉 연기자 간의 능력차이가 커서 원작희곡의 말끔한 선이 흐트러지고, 놀이판의 신명과 중심사건의 감동도 만족스럽지는 않으며, 그 둘 사이의 연결도 유기적이기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나열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그런 허점을 무리한 치장으로 가리지 않은 연출의 태도는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리라 생각한다.<오세곤 연극평론가·가야대교수>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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