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진다. 뒷산 녹음이 깊어 가고, 그 녹음을 먹고 목소리를 틔울 새소리를 기다려 볼 때다. 이런 날엔 새소리에 화답하여 거문고줄 고르며 흥에 겨워했을 옛 시집 속의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 「푸른 건 버들이요 누른 건 꾀꼬리라/ 너의 빛도 좋다마는 너의 소리 더욱 좋다/동자야 오음륙률 갖추어라 그를 화답하리라」는 시조가 혀 끝에 맴도는 것도 이 무렵이다.그러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라고 이런 멋진 자리를 마련하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 녹음 우거지고, 아직 시들지 않은 봄꽃이 군데군데 어우러진 어느 햇볕 좋은 날, 바람결 심하게 닿지 않는 안온한 골짜기에다 음악회를 마련한다면, 그야말로 자연미 넘치는 공연이 될 것이다.
이런 연주장에 너무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면, 자연의 소리보다 사람 소리가 더 커지게 될테니 속세적인 관객동원 문제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것이고, 청중의 관심은 음악가의 숙련된 연주기량보다는 자연과 하나가 될 「음악 속」에 귀를 기울일 터이니 연주 중에 실수할까봐 저어하는 마음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마치 바람결처럼, 산내음처럼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우리 음악의 선율과 만날 때, 느긋하고 한가로운 전통음악미의 감동이 봄향기보다 더 오래 갈 것이 분명하다.
생각이 이쯤 미치면, 오늘날 전통음악 공연문화가 너무 틀에 박혔다는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전통음악의 음향을 고려하지 않은 공연장, 그 공간에서 이뤄지는 연주회방식, 마이크로폰을 통해 확성된 악기소리, 연주회를 준비하는 음악인들의 생각, 공연장을 찾는 청중의 의식이 그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식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음악회에 딸린 이러저러한 상식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난 참신한 공연기획과 정책이 전통음악의 미를 새롭게 부각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참신한 기획 중에는 반드시 자연미를 추구해 온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자연 속에서 감상하며 음악을 통해 자연과 하나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획도 한자리 차지했으면 좋겠다.<송혜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송혜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