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이 역사를 바로 써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문민정부하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주역은 정치인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며,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이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래선지 검찰의 힘이 너무 세다고도 하고, 검찰이 정치 경제 사회의 흐름을 지나치게 좌지우지한다고도 한다. 최근들어 이런 말들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바로 오늘 아침의 신문을 펴 보면 명약관화해진다. 온통 검찰기사들이다.총선의 여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당선자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엊그제 당선자 한 사람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당선의 환호도 잠깐, 당선된 것이 빌미가 돼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이 당선자는 『형평을 잃었다』고 항변했다. 위법했다면 처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형평을 잃었다」는 그의 항변은 귓가에 남는다.
사회정의 구현의 지름길은 죄지은 자를 반드시 찾아내 형벌을 받게 하는 것 뿐이다. 그 역할을 검찰이 맡도록 법률에 규정하고 있다. 검찰의 기소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검찰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이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른바 사회정의 구현의 딜레마다.
교통경찰관이 네거리에서 신호위반 차량을 적발했다. 적발된 차는 여러대중 맨 앞장서서 달리던 차였다. 그 뒤로 몇대가 뒤따랐으나 앞차를 적발하는 사이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적발된 차의 운전자는 항의를 했다. 『왜 나만 잡느냐, 내 뒤 차들은 나보다 위반 정도가 더 심한데…』 그러나 경찰관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나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차를 적발할수 있느냐, 당신이 걸린 것뿐이다. 검찰은 선거법 위반사범 처리등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낚시에 걸린 고기만 잡을 수밖에 없다』 즉, 낚시꾼이 강속에 고기가 많이 있는 줄은 알지만 다 잡지는 못한다. 낚시에 걸린 고기만 잡을 수밖에 없다. 선거법 위반수사가 이에 해당할 터이다.
아마도 이번 총선에서 선거법을 제대로 지킨 당선자는 없을 것이다. 특히 당선자들이 법정선거비용 한도내에서 선거운동을 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듯 싶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조차 친구 친지들이 이번 선거에서 얼마 얼마를 썼다고 공공연히 말들을 한다. 억대 앞에 두자릿수를 꼽기도 한다. 이 중에 누가 위법대상이 되는가. 교통경찰관의 논리인가, 아니면 낚시의 논리인가,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다. 이번 총선에서 무려 22명의 검사출신이 당선됐다. 공교롭게도 깨끗하게 검사시절을 보냈다고 주장했던 어떤 사람도 후보로 나와 「깨끗하지 않게」 선거운동 하는것을 보았다. 그도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하는 많은 흔적을 남겼다.
검찰도 신이 아니므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는 이를 문제삼지 않는다. 12·12, 5·18 사건에 대한 처리가 그 예이다.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의견을 냈던 검찰이 하루아침에 기소의견으로 바꿨다. 검찰은 「성공한 내란」의 당사자 전원을 결국 재판정에 세웠다.
얼마전 검찰이 발표한 장학로씨 비리사건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장씨가 받은 돈중 어떤 것은 뇌물이고 어떤 것은 떡값이 됐다. 과연 뇌물과 떡값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느 분야나 딜레마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잘 정돈된 사회일수록 딜레마는 적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딜레마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다. 지금의 개혁사정이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적 흐름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딜레마는 적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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