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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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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장명수 칼럼)

입력
1996.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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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남편이 임종을 앞두고 뭔가 마지막 말을 하려고 애쓸때, 병석을 지키던 아내는 자기를 찾는줄 알고 남편의 얼굴에 귀를 대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이 숨을 거두면서 겨우 발음한 말은 「당신」이 아니라 「어머니」였다고 한다.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할머니 생각을 했다. 나의 할머니는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모든 기억이 절망적으로 뒤죽박죽이 된후 할머니가 오매불망 찾는 단 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머니는 어쩌면 한번도 나를 보러 안오시나. 우리 어머니한테 연락 좀 해다오』

『할머니의 어머니는 벌써 삼십년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실수가 없어요. 기다리지 마세요』

『세상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할머니는 어머니의 부음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서럽게 우셨다. 그리고 조금후엔 다시 어머니가 왜 안오시느냐고 애태우곤 했다.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하도 애절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눈물흘릴 때가 많았다. 나이들수록 가까운 기억은 멀어지고, 먼 엣날의 기억은 새로워진다더니,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된 듯 어머니를 보고 싶어 했다. 혼돈과 미망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할머니가 그 의미를 놓치지 않았던 유일한 말은 「어머니」였다.

죽음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이 한결같이 찾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한다. 병석에 오래 누워있는 사람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자주 눈물 흘린다면 세상 떠날 날이 멀지 않은지도 모른다. 왜 인간은 죽음앞에서 어머니를 부를까. 애간장이 끊어질만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서 이 세상에 왔으니 죽는 순간 다시 어머니의 태(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누군가 말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영혼이 자식들을 지키다가 낯선 죽음의 세계를 겁내지 않도록 손을 잡아 인도해 주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죽은후 처음 만나는 영혼은 아마 어머니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머니란 얼마나 확고한 운명적 존재인가. 나의 생명을 잉태했던 그 절대적인 인연을 누가 가를수 있겠는가. 우리가 죽음앞에서 부를 사람이 그 어떤 「당신」이 아니고 「어머니」라면, 우리는 좀 더 일찍 그 의미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어머니를 생각할수 있는 5월은 참 좋은 달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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