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야망성 조명 현대인 허위의식 꼬집어제목부터 색다른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화제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신예 홍상수감독(35)이 연출한 이 작품은 전혀 영화의 재료가 될 것 같지 않은 소재를 골라 개성있는 방식으로 치밀하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때문이다.
구효서씨의 소설「낯선 여름」에서 주인공의 직업과 이름 등 작품의 기초를 따왔는데 제작일정이 늦어 여름을 놓치는 바람에 원작과 다른 제목을 붙이게 됐다.
「돼지가…」는 얽히고 설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영화이다. 유부녀와 순수한 사랑에 빠진 삼류소설가 효섭(김의성 분), 결벽증에 걸린 샐러리맨 동우(박진성 분), 효섭과의 결혼을 꿈꾸며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극장 매표원 민재(조은숙 분), 동우의 아내이면서 일상을 탈출하는 도구로 효섭을 택한 보경(이응경 분)이 주인공들이다.
네사람은 야망과 사랑, 섹스와 권태의 늪에서 몸부림치고 관객은 현미경같은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이들을 구경한다. 영화는 네사람이 펼치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따라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된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는 일상등 삶의 미세한 부분까지 담아내는 화면에 관객이 숨을 죽이곤 한다. 감독은 자연광 위주의 색깔과 다큐멘터리 같은 차분한 영상으로 작품의 무게를 더하면서 주인공들의 갈등을 관객에게 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는 자신이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허위의식을 꼬집고 있다. 관객은 우물에 빠져 절규하고 전율하는 돼지를 바라보고 있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그 역시 한마리의 돼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돼지가…」는 시사회를 통해 평론가들로부터 『신선하고도 인상적이다』『한국 영화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는 등 칭찬을 받았다. 4일 개봉.<이현주 기자>이현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