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식수체계 90%가 1차대전때 수준/연 94만명 수인성질병 고통 900명 사망/클린턴 행정부도 오염규제 등 대책 서둘러방대한 국토에 풍부한 수자원을 지닌 미국의 국민은 먹는 물 만큼은 믿고 마셔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수원지역의 개발이 확대되면서 오염요인은 늘고 있는데 반해 물공급시설과 체계는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도 마실 물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93년 12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일어난 사건은 먹는 물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농장에서 버려진 폐수속의 동물성미생물 「크립토포리디움」이 수돗물에 유입돼 40만명 이상이 수인성질병을 일으켰다.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100여명에 이르는 대참사였다. 이에 앞서 90년 미주리주의 카불에서는 파열된 낡은 수도관에 오염물질이 유입, 4명이 숨지고 243명이 치료를 받았다. 수도 워싱턴DC와 뉴욕에서도 93년이래 수차례에 걸쳐 식수원의 오염수위가 위험수준에 육박, 시장이 물을 반드시 끓여 먹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천연자원보존회의(NRDC)」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식수공급시설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상수원지역의 소유권확보나 유해물질유입방지 차단시설등 기초적인 오염방지시설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인구 1만명을 대상으로 식수를 공급하는 대형 지역식수체계(Community Water System)의 90%가 1차대전이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수시설을 갖추고 있다.
환경운동단체 「깨끗한 물 운동」은 지난해 7월 활성탄이나 오존을 이용, 수질정화를 하는 지역식수체계는 겨우 9%미만이며 단순여과시설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곳이 10%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환경운동그룹의 B 코헨씨는 94년 「수돗물보고서」를 통해 『미국내에서는 5가지 주요농약이 포함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사람이 1,40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정부자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은 드러난다. 국립질병통제센터(CDC)는 미생물 중금속등 수질오염으로 매년 94만명이 수인성질병을 앓으며 9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오존정수법은 부작용이 적고 정화효과가 강력해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일반화하고 있지만 환경보호국(EPA)에 따르면 지역식수체계가운데 오존소독을 실시하고 있는 곳은 1%에도 못미친다.
미국의 수질정화수준이 이처럼 낙후된 것은 한마디로 관심과 경계를 게을리해왔기 때문. 수도 워싱턴DC만 하더라도 구도심지역은 1920년에 완성된 식수공급시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상수도관 가운데 일부는 1850년에 건설된 것도 있어 지난해 1월의 경우 워싱턴DC에서만 1주일동안 100건의 수도관파열이 있었을 정도다. 전국 20만개 가량의 지역식수체계(CWS)를 통해 매일 1인당 105갤런의 물이 공급되고 있지만 전체인구의 17%인 4,300만명의 미국인은 먹는 물을 아직도 자체조달하고 있다. 호수 강등 상수원의 수질보호책을 규정한 「수질오염방지법(Clean Water Act)」과 「안전음용수법(Safe Drinking Water Act)」이 각각 72년 74년 제정됐지만 규제기준과 처벌규정이 약해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국립 지질학회 수질담당 연구원 웨인 솔리씨는 『댐건설등 대형 식수원 개발을 통해 신선한 물을 무한정 찾을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보다 효율적으로 수질을 보존하고 정화하는 방법을 집중모색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클린턴행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상수원 수질보호기준을 높이고 오염물질 배출업소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안전음용수법 개정안」을 지난해 의회에 제출했다. 또 연방정부차원에서 식수 수질보존기금 46억달러모금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맨해튼에서 120마일떨어진 캐츠킬, 델라웨어지역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다 써온 뉴욕시도 여과처리시설을 건설하도록 결정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체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EPA는 모든식수체계를 안전기준에 적합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98년까지 86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는 지난해 EPA예산을 72억달러에서 49억달러로 33%나 삭감했다. 공화당은 또 「수질오염방지법」과 「안전음용수법」의 규제기준을 약화시키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해놓고 있어 안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미국의 식수관련산업/정수시설 등 작년 12조원 시장/먹는 샘물 1인 소비량도 10년새 3배로
수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먹는 물과 관련한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뉴욕의 연구용역회사 미디어마크에 따르면 먹는샘물 정수시설 등 식수관련산업의 미국내 시장규모는 지난해 170억달러(한화 약 12조 3,600억원)에 달했다.
대표적인 식수관련산업인 먹는 샘물의 경우 1인당 연간소비량이 83년 3.6갤런에서 87년 6.4갤런, 94년 10.4갤런(39.4ℓ)으로 10년새 3배가 늘었다. 뉴욕음료마케팅사의 분석에 따르면 이 분야의 매출액도 93년에는 전년대비 25%, 94년에는 전년대비 32%가 증가하는등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내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먹는 샘물 상표는 「애로헤드」 「폴란드스프링」 「스파클레츠」순.
가정에 직접 정수시설을 갖춘 가구도 미국 전체가구의 15%에 달하고 있다. 정수관련장치의 시장규모는 88년 31억달러에서 지난해는 77억달러로 급증했다. 정수시설로는 간단한 정수기가 대부분이지만 1,000달러를 넘는 물연화장치나 오존 자외선 소독장치등 첨단고가품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식수에 대한 우려심리를 겨냥, 매일 가정의 수돗물을 수거해 수질 검사를 해주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인터뷰/미 「깨끗한 물 운동」 위원장 프리드리히씨/“뒤늦게나마 물 심각성 인식 다행/공화 「더러운물법안」 저지 큰 성과”
올해로 결성 25년째를 맞는 「깨끗한 물 운동(Clean Water Action)」은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전국에 걸쳐 7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내 최대 수질보존운동단체다. 이 단체의 집행위원장 존 프리드리히씨는 전화인터뷰를 통해 『최근 금융전문지 「머니매거진」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 미국인들이 이사를 할때 고려하는 가장 큰 요인은 먹는 물이었다』고 소개한뒤 『첨단 정보산업분야에서는 「고속도로(인포메이션 슈퍼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생명의 근원인 먹는 물에 있어서는 포장도 안된 먼지길을 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들어 많은 사람들이 물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는 전국규모의 수질보존 운동단체만 25개가 있고 지역단위의 소규모단체는 수천개에 달한다. 『최근 몇년동안 특히 지역운동단체들의 활동이 크게 활발해졌다』고 말하는 프리드리히씨는 지난해 공화당 버드셔스터 하원의원(펜실베이니아주)에 의해 정기국회에 상정된 「깨끗한 물 법」개정안의 통과를 일단 저지한 것을 큰 성과로 여기고 있다. 환경운동단체들에 의해 「더러운 물 법안」으로 명명된 이 개정안은 상수원지역의 개발제한을 완화하고 수질오염원 배출기업에 대해 15년간의 시정유예기간을 주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는 「환경문제는 초정당차원의 문제」라고 전제, 『72년 양당이 공동발의해 제정한 이 법을 대기업들을 등에 업은 공화당이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공화당의 정책을 맹렬히 공격했다.
프리드리히씨는 『일단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보다 근원에서 부터 오염원인을 없애는 것이 위험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며 『기술이나 자금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얼마만큼 진지하게 물문제에 접근하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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