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4자회담제의로 남북관계가 해빙기미를 보이자 재벌그룹들이 대북경제협력추진에 또다시 경쟁적 양상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대북경협은 정치적 기류에 따라 단속을 거듭해 온데다 최근 북한은 주체경제를 탈피, 자본주의경제방식의 도입과 함께 수출시장개척과 투자유치 등에 적극적인 의지를 밝혀 기업들이 경협재개를 서두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아직 4자회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 대북진출에 과열조짐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정부가 이번 삼성전자 등 3개 기업이 신청한 1천9백20만달러규모의 대북투자사업을 승인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4자회담에 호응케 하는 이른바 화해분위기조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규모면에서 5백만달러 이내와 생필품 등 경공업위주라는 정부의 기본가이드라인을 철폐하고 사업내용도 통신등 인프라(사회간접자본)와 전기·전자 등 첨단분야로 확대한 것은 북한이 4자회담을 수락, 남북한간의 새로운 평화장치마련협의에 적극 호응할 경우 인프라 등 각종 분야의 경협을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아직까지 임가공협력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대우가 92년 최초로 사업자승인을 얻은데 이어 작년 5월 협력사업허가를 받아 평양부근 남포에 북한의 삼천리 총회사와 합작으로 민족산업총회사를 세워 1천3백30명의 인원을 고용, 가방 등 3개 공장을 내달에 가동키로 한 것은 매우 시험적인 합작이라 하겠다. 이 공장은 남북관계의 정치적인 파고속에 근 4년만에 겨우 가동에 들어갈 정도로 남북간 경협은 실로 어려운 것이다.
우선 경협을 희망하는 기업이 남북교류협력법에 의거, 사업자승인을 얻어야 하고 그 후 북한측과 구체적인 합의를 거쳐 사업계획서를 제출, 통일원의 사업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절차의 완료일 뿐 북한에서의 투자와 인력 등의 확보, 에너지 공급, 그리고 노사 및 양측간 분쟁시 해결방안에 대한 장치는 아직도 미궁이다. 북한은 투자유치를 위해 20여개 관계 법규를 마련했다지만 각 법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도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북한측의 말만을 담보로, 혹시 불참시의 훗날 불이익 등에 너무 집착해 무조건 진출과 총수들의 방문의사를 마구 밝히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남북경협이 진척되지 않은 책임은 엄밀히 말해 양측 모두에게 있다. 정치적 기류에 따라 중단과 허용 등을 오락가락한 남쪽 당국도 책임을 느껴야 하지만 당국자간의 대화를 외면한 채 남한기업을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2중적 자세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
차제에 4자회담을 제기한 만큼 북한은 이를 전폭 수용, 당국자간의 평화체제 논의와 함께 투자 보장 협정등을 서둘러 남북 경협의 물꼬를 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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