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남북 경협 사업자로 삼성전자등 3개 업체를 새로 지정하고 1,900만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승인했다는 보도가 일제히 각신문의 1면 톱에 올랐던 지난 일요일, 『또 속았구나』라는 불쾌한 기분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선거전이 한창일 때 판문점을 시끄럽게 한 북한의 장난질, 그것을 선거에 십분 활용한 정부 여당, 정도이상으로 흥분한 언론등에 골고루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북한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우리에게 갈등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그들이 툭하면 저지르는 망나니 짓과 생트집을 적절하게 으르고 달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것이 우리의 운명인데, 과연 어떻게 으르고 달래며,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에 항상 갈등을 느끼게 된다. 「수류탄을 든 아이」의 손에서 어떻게 수류탄을 뺏느냐, 북한 당국과 북한 동포를 어떻게 분리하여 대응하느냐에 대해 강·온론이 대립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북한은 우리의 갈등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총선의 와중에서 북한이 정전협정 의무 포기를 선언하고, 판문점에 병력을 넣었다 뺏다하며 긴장을 고조시킬때, 우리는 그들이 선거를 이용해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으나, 알면서도 영향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장난질이라고 느끼면서도 투표에 영향을 받았던 것은 여당도 야당도 대북정책에서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국민은 김영삼정부의 대북 노선이 무엇인지 지금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경수로 협상, 쌀 지원, 남북 경협등 중요한 문제에서 정부는 북한의 생트집과 여론에 끌려다니며 수없이 입장을 바꿨고, 미숙한 언급이 잦아 불신을 더 깊게 했다. 야당역시 대북관계의 혼란을 부채질할뿐 일관성과 유연성을 갖춘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불안속에 많은 유권자들은 안보를 위해서는 그래도 여당이 튼튼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안정론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 북한의 판문점 행패는 씻은듯 잊혀지고, 정부는 적극적인 북한 회유에 나서고 있다. 선거직후 한·미정상회담에서 4자회담을 제의하고,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이 엿보이는 상황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국민은 어리둥절하고 불쾌하다. 북한이 이제 우리의 선거분위기까지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판문점 사태에서 국민은 누구에게 가장 크게 속았나. 북한인가, 정부여당인가, 언론인가. 화가 난 사람들은 『김정일이 정말 선거에서 신한국당을 봐주고 크게 얻으려는거 아냐?』라고 김정일에게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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