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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환 「상자속의 생」과 채영주 「웃음」(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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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환 「상자속의 생」과 채영주 「웃음」(소설평)

입력
1996.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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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설 빈틈 넉넉히 채우는 두 장편류 환의 장편소설 「상자 속의 생」을 보면 한 젊은 은행원이 일인칭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직장선배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데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그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과정을 기본 줄거리로 삼고 있다. 그 과정을 일관되게 채우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상과 윤리의식과 직업적 능력을 다 갖고 있지만 거대한 현대사회구조의 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깊은 한계의식에 시달리기도 해야 하는 봉급생활자의 현실적 삶에 대한 정밀한 묘사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그같은 현실적 삶의 묘사로만 시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추리소설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통하여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파헤치고자 하는 것은 은행이라는 조직을 통하여 단적으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사회의 심층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힘의 구조이다.

한편 채영주가 이번에 내놓은 장편소설 「웃음」을 보면 한 젊은 연극연출가가 일인칭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가 자신의 외오촌아저씨인 장군으로부터 위촉받은 한 가지 사업을 성사시켜 나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를 이룬다.

그 사업이란 장군과 극한적인 대립을 보인 끝에 집을 뛰쳐나가 동남아 일대를 떠돌고 있는 그 아들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일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사업에서 성공을 거둘 뿐 아니라, 그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함께 뛰어다녔던 오래 전부터의 여자친구에게서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결혼에까지 이름으로써 또 다른―보다 더 근본적인―의미에서의 성공을 이룩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과정은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는 바 그대로 경쾌하고 자유로우며 우상파괴적인 「웃음」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

이상에서 소개한 두 편의 작품은 우리나라의 소설문학에서 그동안 크게 결핍되어 왔던 두 가지 부분 중의 하나씩을 각각 떠맡아 성공적으로 메워주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보여주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우선 우리나라의 소설문학은 그동안 「전문적인 화이트칼라의 직업세계」를 천착하는 데 있어 극도로 빈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왔는데, 「상자 속의 생」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소설문학의 고질적인 한계를 시원하게 돌파해 준 역작으로 기억되어 마땅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소설문학은 그동안 엄숙주의의 포즈에 의하여 너무나 일방적으로 지배당해 온 나머지 「세련된 로맨스풍의 희극」이라는 분야에서 주목받을만한 작품을 지극히 드물게밖에 산출하지 못했던 셈인데, 「웃음」은 바로 이 분야에서 우리 소설문학이 모처럼만에 이룩한 귀중한 성과로 기록되어 마땅할 것이다.<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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