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들처럼 대학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아는 것도 많지 않고, 글을 재미나게 쓸 줄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분들께 제가 겪었던 일 한가지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글을 읽고 피식 웃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야기를 꾸며낼 만한 재주를 갖고 있지 못하고 이 얘기는 사실입니다.
저는 북한에서 만 17세에 군대에 갔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대한민국의 40∼50대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군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 일들중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93년 5월2일, 참 좋은 날씨였습니다. 화창한 봄날이었죠.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가 속한 소대는 삭도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삭도란 케이블카처럼 생긴 기구로, 여기에 물통을 달아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은 물을 길어 등짐으로 져나르는 일이 없지만 인민군은 아직도 직접 손으로 물을 긷습니다. 이 작업이 여간 고되지 않습니다. 특히 저희 소대처럼 고지대에 위치한 부대는 생고생을 해야 합니다. 어쩌다 전기가 들어오면 삭도가 이 일을 대신해줍니다. 그 날은 전기가 들어와 삭도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만 사고가 생겼습니다.
군인 한명이 물통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통나무로 물통을 떠받치는 작업을 하다 통나무에 머리를 맞아 쓰러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귀는 다 찢어져 너덜너덜 했습니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져 온몸을 계속 문지르고 두드려 충격을 주어야 했습니다.
혀까지 자꾸 말려들어가 목구멍이 막혀 펜치로 잡아당겨 끌어내고, 거기에 젓가락을 관통시켜 박아 놓았습니다. 아마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 젊은 분들은 그러하겠죠.
그는 그 상태로 1주일을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상급부대에서 간부들도 많이 왔는데, 이 사람들이 그 군인 옆에서 술추렴 하고 떡처먹으면서 3일을 눌러 앉아있다 갔습니다.
설사 자기 직속부하가 아니라 해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그 군인이 어떻게 해서 변을 당하게 됐는지를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라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런 상급자들 밑에서 10년을 근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와서 어느 군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년을 군에서 근무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군인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자살하고 말지요』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자네도 고생 안해 봤구먼』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내가 살던 곳하고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국민들이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이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살던 이야기를 하면 믿지를 않더군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회체제는 정말 좋더군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겠더라고요.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에서 살다가 여기와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보니 북한도 빨리 깨우쳐서 이런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북한 사람들은 아직도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자유하면 조직도 법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체제가 그 순진한 사람들을 그렇게 머저리로 만들어 버린것입니다.
□약력
▲75년 함북 연사출생(21세)
▲함북 연사군 신양인민학교·함북 함흥시 광화고등중학교 졸업
▲95년 6월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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