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까지만해도 우리사회에 차자분가제라는 것이 있었다. 장자가 부모를 모시는게 철칙처럼 돼버렸기 때문에 차자는 결혼하면 부모에게서 떨어져나가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가족관계였다.그러던 것이 핵가족사회가 되면서 대부분의 가정이 독자만 두기에 이르렀다. 차자분가제란 개념이 사라지고 독자인 장자가 분가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리고 부모들은 아들이든 딸이든 구분할 것 없이 공부는 하겠다는 데까지 시키고 장가가고 시집가면 아파트든 전셋집이든 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줘 딴살림을 할 수 있게 해줘야만 부모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무한책임의 자녀교육관이 계층을 가릴 것 없이 유일한 가치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부모들의 무한책임교육관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교육을 많이 시켜야 하는 것으로 나타내려 하다보니 왜곡된 고학력풍조가 점점 심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대학입시가 국가의 최대 최고 관심사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6공말기인 92년에 대통령교육자문위원회가 국민 5,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교육에 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사회의 고학력풍조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실감케 한다.
「대학 이상까지 교육을 시키겠다」는 응답이 아들의 경우는 96%, 딸의 경우는 93.7%를 차지했다. 3년전인 89년에 다른 정부기관에서 조사했던 같은 설문에 아들은 86%, 딸은 76%가 응답했던 것과 비교하면 고학력 풍조가 해를 거듭할 수록 심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아들은 54%, 딸은 23%에 불과하다.
부모들의 고학력열기가 전혀 식을 줄 모르니 해마다 30만명이 넘는 고교졸업자들이 대학진학을 위해 재수와 삼수를 하는 풍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대학입시 뒤끝이면 시험을 잘못친 수험생이 자살하고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도 성적부진에 좌절해 꽃망울 같은 삶을 스스로 꺾는 사회적 비극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3병」과 「고3어머니병」까지 생겨난지도 오래다.
그처럼 어렵게 대학을 보내 4년 공부를 마쳐봤자 모두가 원하는 직장을 잡아 고생한 부모에게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40%에 가까운 학사들은 일자리를 잡지 못해 전문대학에 다시 입학하는 학력파기 현상까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그때문이다.
교육부가 집계한 4년제대학졸업자의 취업통계를 보면 94년의 대졸자취업률은 63.3%였고 95년의 취업률은 60.7%였다. 올해의 대졸취업률은 아직 집계가 안돼 알 수 없지만 95년수준을 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대졸자 취업상황을 좀더 분석해 보면 실질적인 취업률은 훨씬 떨어진다. 94년에 대학을 졸업한 17만9,500여명중에서 대학원진학자 1만4,800명, 군입대자 5,020명, 취업여부를 알 수 없는 1만7,300명을 취업 희망자에서 제외, 14만2,300명만이 취업희망자로 보고 이중에서 9만110명이 취업해 63.3%의 취업률을 기록한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취직을 못해 대학원을 진학한 자와 조사에서 빠진 자를 계산하면 실질취업률은 60% 밑으로 떨어진다. 이런식으로 따져보면 95년의 실질취업률은 50%가 될까말까할 정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부모들은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사회진출을 도와주며 결혼시켜 분가하게 되기까지 자녀들만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고 자신들의 삶을 언제까지 희생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봤자 지금 40대중반을 넘긴 부모세대는 그들의 부모를 위해 나름대로 효도를 했지만 그들의 자녀들로부터는 효도도 받지 못할 세대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효도를 한 세대이면서 효도를 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가 될 바에야 자녀교육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무한책임의 자녀 교육관을 우리모두가 한번쯤은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시도하는 일이야말로 교육개혁의 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교개위가 개혁의 손길을 뻗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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