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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천변풍경」/1930년대 청계천변 삶 그려(고전여행: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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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천변풍경」/1930년대 청계천변 삶 그려(고전여행:53)

입력
1996.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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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필치·영화같은 작법/한국 모더니즘 대표작 꼽혀 박태원(1909∼86년)의 「천변풍경」은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빛바랜 사진처럼 담담하게, 그러나 매우 세련된 필치와 새로운 기법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조광」 1937년 1월호부터 9월호까지 연재된 이 소설은 이때문에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6·25전쟁 중 월북한 뒤 북한에서의 민중적, 역사적 박태원을 대표하는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과는 무척 다른 분위기이다. 특별한 줄거리나 지향점 없이 이발소 사환 재봉의 3인칭 시점으로 청계천변 도시인들의 삶을 훑어나간다.

 재봉은 바깥 풍경을 본다. 재력있는 사법서사 민주사가 이발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숨 짓는다. 약국 행랑에 사는 만돌어멈은 안방마님의 꾸지람을 듣는다. 3월 중순에 이쁜이네에 경사가 생겼다. 아버지 없이 혼자 큰 이쁜이가 시집을 가기 때문이다. 신발집 가족들은 기울대로 기운 가세 때문에 2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몰래 도망친다.

 민주사는 마음이 우울하다. 마작으로 거액을 날렸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지만 부회의원 선거전에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올까 걱정이다. 더구나 좋아 지내던 안성집이 젊은 학생하고 붙어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만돌어멈은 약국 행랑에서 쫓겨난다. 민주사는 선거에 져서 병석에 눕는다. 이쁜이는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리다 소박을 맞는다. 재봉이는 젊은 이발사 김서방과 밤낮 다투면서도 떠나지 않는다. 얼마 안가서 이발사 시험에 합격하리라는 것이 이발소 주인의 말이다.

 이 소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영화를 구경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천변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대로 보여준다. 그 관찰에는 어떤 사상이나 목적도 없다. 이같은 영화기법의 활용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어서 많은 문인과 독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관찰하는 공간과 시간을 한정시켜 소설의 내용이 무한히 늘어지지 않고 그림처럼 한눈에 읽혀지게 한 것도 특징이다. 시간적으로는 1년이 이 소설의 관찰 대상이다. 이 소설은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만 하다」라는 말로 시작해 「입춘이 내일 모레라서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의 햇살이 바로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라는 이듬해 계절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공간적으로는 청계천변으로 한정된다. 모든 사건이 그 안에서 일어나며 그 안의 시각으로 해석된다.

 새로운 시도들로 이 소설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으나 지나치게 풍경 자체의 묘사에만 집착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소설 본래의 주제로부터 상당히 일탈할 수밖에 없었다. 요컨데 외면의 묘사가 내면의 심화와 맞닿아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데 이 소설의 한계가 있다.<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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