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에서 레이건전미국대통령과 그의 아내 낸시여사의 사랑 이야기를 읽었는데,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영화배우였던 두 사람은 1952년 결혼한 이래 한평생 서로를 아기자기하게 사랑했고, 「역대 백악관 주인중 최고의 커플」로 꼽혀왔는데, 그들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낸시는 결혼이 50대 50의 파트너십이라고 생각지 않고, 어느쪽이든 상대를 위해 80을 줄수있는 80대 20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물론 낸시는 자신이 80을 주려고 노력했고, 최근에는 치매에 걸린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한다. 백악관 시절 그들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나 레이건의 명연설등은 왠지 영화장면 같아서 친밀감을 못 느꼈는데, 치매에 대처하는 노년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사랑이란(특히 결혼이란) 평등한 관계여야 하며, 50대 50의 파트너십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의식은 거의 강박관념으로 젊은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이만큼 너에게 줬으니 너도 그만큼 달라는 생각, 내가 더 주는것은 손해 정도가 아니라 자존심 문제라는 생각등이 모든 사랑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젊은이들 만이 아니다. 자녀를 결혼시킨 부모들은 사랑하는 아들 딸이 일방적으로 손해볼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래 네가 잘 졌다. 때로는 지는게 이기는 거란다. 부부관계가 순탄하려면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한다』고 타이르는 부모는 적고, 『네가 무슨 죄졌니? 아니면 병신이냐? 초장에 버릇 잡지 못하면 평생 고생이니 알아서 해라』라고 펄펄뛰는 부모는 많다.
연인사이, 부부사이만 팽팽한가. 요즘에는 부모자식 사이도 팽팽하다. 피차에 조금도 양보를 안하고 끝까지 싸우거나, 어느 한쪽이 토라져 몇주씩 말을 안하는 부모와 자녀를 가끔 볼수 있다. 같은 또래 친구사이보다 더 경쟁적이고 대립적인 모녀관계도 있다. 자녀수가 적어 부모자식 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해지고, 애증의 표현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사랑에서 가장 크게, 결정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50대 50을 따지지 않고 80을 주겠다는 푸근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나 자신은 손해보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되었을까. 각자 사랑의 팽팽한 줄을 조금씩 늦춘다면, 내가 80을 주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80을 주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 사이의 고통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 오고 있는데, 팽팽하지 않은 사랑을 생각해보고 싶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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