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산불 고성군 죽왕·토성면 “마치 전쟁터”/살아남은 소들 고통에 발버둥25일 하오 2시 화마가 휩쓸고 간 강원 고성군 죽왕, 토성면 일대. 이틀전만해도 만발한 진달래 개나리로 화려한 꽃동산을 이뤘던 산야는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찬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변해있었다.
숯더미로 변한 나무가지,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가축들의 시커먼 사체만이 잔해로 남았다. 주민들은 아직도 검은 연기가 피어 오르는 폐허속에서 잿더미로 변한 집주변을 돌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학야 2리 도학초등교앞에서는 24대의 헬기가 4∼5분 간격으로 소방차가 실어온 물을 현장으로 공수하고 있었지만 강풍을 타고 번지는 산불을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마을주민들은 양강지풍(양양·강릉바람)이라는 말 그대로 간단없이 불어대는 강풍이 불똥을 20∼30씩 날려보냈다고 말했다. 이미 불길이 지나간 곳에서도 바람이 불 때마다 불씨가 되살아나 온 산이 화염으로 뒤덮였다는 것이다.
3년전 솔잎혹파리병으로 죽은 소나무를 잘라내 쌓아놓은 것이 화를 부른데다 20∼30년동안 두텁게 쌓인 낙엽이 불쏘시개 역할까지 해 화마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24일 방4칸 짜리 기와집과 축사 곳간 등 전재산이 한줌재로 변하는 현장을 뜬 눈으로 지켜본 토성면 학야2리 김종관씨(48)는 『불길이 하도 거세게 몰아쳐 막내동생 전세방 얻어주려고 어렵게 구한 현금 5백만원이 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며 『평생을 두고 마련한 집과 일터를 잃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산자락에 위치해 화마를 피하기 어려웠던 죽왕면 삼포1리는 농가 33채중 28채가 전소되고 창고 축사 36채도 함께 불에 타 폐허가 됐다. 군부대 관사 8채도 함께 잿더미로 변했다. 가옥이 전소한 이마을 어상진씨(64) 축사에는 새끼밴 어미소 2마리를 비롯한 소 4마리가 고통을 못이겨 몸을 뒤튼 채 나뒹굴고 있었다.
학야2리 주민 1백여명은 이틀째 불길을 피해 벌판에서 밤을 새웠다. 이 마을 장강신씨(56)는 『불길이 집 바로 뒤 4까지 덮쳐 「끝났구나」 싶었는데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불길을 잡았다』며 『가재도구를 시멘트창고에 쓸어넣고 집앞벌판에서 가슴졸이며 이틀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임시 이재민수용소인 도학국교에는 아침 점심을 거른 주민들이 침통한 낯빛으로 모여들어 앞일을 걱정하고 있었고 감기에 걸린 아이들은 연신 재채기를 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고성=곽영승 기자>고성=곽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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